안산비화-1

반월시로 불릴 뻔한 안산

반월시 단원구 고잔동 515번지 반월시청.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지명이 될 뻔한 이름이다.

첨단 산업과 문화 해양의 도시 안산이란 지명이 반월시로 불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 1970년대 후반 반월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반월 공업단지의 배후 도시를 관할하던 행정 관청이 반월 출장소였으니 어쩌면 반월이란 지명이 낯설지 않을 수도 있다.

반월(半月)은 가득찬 온달이 아니라 반달을 의미한다. 반월이란 지명은 역사성 없이 일제가 만들어 붙인 지명 이름이다.

역사적으로 볼때 시흥군 일대에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말까지 1천년여간 시흥군 안산군 관천군이 존재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던 것이 1913년 일본인들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안산군 과천군을 폐지하여 시흥군으로 통폐합 하였다. 그후 과천군은 과천면으로 되면서 그 당시까지 명맥을 이어 오고 있었으나 안산군은 폐지되면서 안산면이라 칭하지 않고 수암면으로 개칭되어 역사적인 지명인 안산이란 이름이 없어지게 됐다.

일제는 또 1924년 당시 시흥군 수암면 일대를 반월이라 칭하고 행정 구역 개편을 하면서 반월이란 지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50년 가까이 반월 출장소를 위시로 반월이란 지명이 쓰여지게 되었다.

반월이란 지명은 독립을 한 1945년까지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쓰여졌고 널리 통용됐다. 때문에 국가 산업 공단을 건설하면서 공단 이름도 반월 공업단지라고 인근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게 됐다. 이에따라 반월출장소가 독립신도시로 승격하면서 반월시로 되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다

‘신공업 도시 후보지로 결정된 지명 명칭을 반월이라 한 것은 특별한 유례가 있어서는 아니다. (중략) 이 지역은 1960년대 공업단지 후보지로 구상되면서 그 당시 명칭이 반월지구로 통해 왔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라 할 수 있었다.’ 그러던중 유천형 이승언 등의 ‘안산지명 찾기’의 노력의 결과 반월 출장소에서 ‘안산시’로 결정 되었다.

특히 유천형은 안산은 고려조 덕종.정종.문종등 왕세자가 탄생한 고장으로 일제가 안산의 정기와 맥을 끊기 위하여 1914년 안산지명을 의도적으로 말살하였다고 해석하여“(안산시사)공감대를 형성했다.

당시 내무부에서는 반월시 승격을 위한 준비가 진행 되고 있었다. 이때 1천년 역사성을 가진 지명을 찾기 위해 유천형씨(전 안산문화원 원장)등의 노력으로 안산시가 지금의 지명을 되찾기에 이른 것이다.

유천형씨는 7년여에 걸쳐 당시 내무부,정부합동민원실,경기도지사, 반월출장소장에게 수차례에 걸쳐 건의문을 보냈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기위한 노력으로1986년 반월시가 안산시로 승격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의식과 해석을 인정한 정부는 극일 측면에서 왜곡된 1천년 역사의 안산 지명을 다시 돌려 놓았다.

참고 :안산시사, 자문:유천형 전안산문화원 원장

<박공주 기자princess@ansa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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