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김영희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부채 그림은 옛 문인들의 휴대용 미술품인데, 다른 말로 선면화라고도 한다. 선조들은 부채에 새겨진 글과 그림이 자신의 품격을 높여 준다고 여겨, 필수품으로 지니고 다님은 물론 여름이 시작되는 단오절에는 이를 선물로 주고받았다.

부채 그림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리라 추측되며, 중국 북송시대에 쓰인 ‘도화견문지’에는 중국에 방문한 고려 사신이 접부채(접는 부채)를 썼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까지 그 형태가 온전히 전해지는 접부채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대의 칠접선이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지닌 부채는 다양한 쓰임을 갖추어 더욱 발달하였다. 부채 자체를 한껏 치장하여 장식용으로 쓰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조선 후기의 판소리에서는 펴고, 접고, 치는 등 없어서는 안 될 다재다능한 악기의 역할을 하였다. 한편으로 양산처럼 햇빛을 막는 용도로 쓰기도 했으며, 부채에 경문을 적어 넣기에 이르렀다.

 

서화가들은 부챗살에 놓인 반원형의 면을 활용하여 매란국죽으로 고결함과 담백함을 표현하기도 했고, 여러 과일과 채소를 소재로 삼은 기명절지도를 그려 복의 의미를 담기도 했다. 아울러 물가에 발만 담근 탁족이나 계곡을 완상하는 모습을 그려 넣어 한여름의 더위를 잠시 잊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의 능호관 이인상(1710-1760)이 그린 부채 그림인 <송하관폭도>는 ‘소나무 아래에서 폭포를 바라보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 화면의 구성은 짜임새가 있으며, 여백과 배치의 절묘함 덕에 그 풍경이 매우 충실하다.

메마른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물가로 넘어질 듯이 자란 노송의 가지는 꺾이고 굽기까지 했지만, 험난한 세월을 받아낸 초연하고 멋진 모습으로 존재한다. 수종이 강한 데다가 오랜 연륜까지 뽐내는 소나무는, 화면을 가로지르고는 널찍한 바위를 아래에 두고 폭포수의 용소를 향해 굴절되어 공중으로 뻗어나간다.

이 노송의 뒤에 서 있는 폭포는 주위에 둘러선 암벽과 너럭바위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다. 그 견고한 형세를 노송이 대각선으로 지르는 구도가 되기에, 그림에서는 대담하고 역동적인 기상이 물씬 우러나게 된다.

암반 위에 홀로 앉은 선비는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장쾌한 폭포 소리에 흠뻑 취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작가의 사의라 할 수 있다. 그림 속 여백에 쓴 화제는 ‘성난 폭포 절로 허공에 울리고 뜬구름은 하늘가에서 그늘을 만들려 하네.’로, 박은의 ‘역암을 노닐며’의 구절을 적은 것인데 이인상의 서체가 지니는 멋이 잘 나타나 있다.

휴대용 선풍기와 에어컨 등 시원함을 한껏 뿜어주는 기계들이 판매되면서, 부채가 점점 전통문화의 상징으로만 새겨져 가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부채를 주고받고, 이를 들어 부쳐주는 행동은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과 존중을 담아낼 수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폭신한 마음과 정성의 메시지를 담은 부채를 친애하는 이에게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채의 아름다움을 다른 이와 공유하여 풍류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시도가 될 터이다. 요즈음 같은 나날에, 집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친구들에게 선면화를 그려서 보내보련다. 얼마나 좋아할지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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