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한정규 칼럼ㅣ

한정규 문학평론가

욕심은 인간의 가장 강한 본능 중 하나다. 또한 필요악이다. 욕심이 더 나아가 탐욕으로 진전 한편으로는 과학문명을 이끌어 사회변화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악의 근원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심이다.

기원 전 341년에 태어난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욕구와 탐욕 만족과 부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며 탐욕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탐욕은 결코 채워질 수 없이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자극을 끝없이 추구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직 절제만이 탐욕으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라 했다.

20세기 후반 이후 소비문화가 팽배된 사회에서 욕망을 절제하라는 교훈만큼 사람들에게 좀처럼 실천할 수 없는 말로 들리는 것도 없다.

시장에는 날로 새로운 상품 그것도 보다 질 좋은, 아름다운 디자인에 색상도 다양화된 새로운 형태의 상품들이 넘쳐난다.

어제 구입한 자동차도 TV도 휴대폰도 구식으로 옛것이 된다. 음식 또한 날로 변화 미각을 자극한다. 그래서 새로운 욕심이 더 나아가 탐욕에 빠져들게 한다.

그 욕심이 탐욕으로 더 나아가 악으로 결국 탐욕이 불행으로 몰고 간다.

다시 말해 악을 촉발 인간의 본성이 크게 훼손 그 어느 동물보다도 못한 괴물로 변해간다. 그 모든 것 지나친 욕심에서 온다.

이웃도 일가친척도 부모형제 자매도 재물 앞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다. 그 모두 문명의 발달이 과학이 낳은 결과다.

재화의 불평등에서 나타나는 못 가진 자의 행태다. 부모가 가진 재물을 놓고 자식들이 폭행 살인을 또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낳아 공중화장실변기에 넣어 죽이고 재물이라면 이웃도 없고 인륜도덕 찾아 볼 수 없다. 인륜도덕 차치하고 법질서 아랑 곧 없는 세상이 됐다.

쥐만 못한 인간도 적지 않다. 쥐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안 되는 동물 중 하나다. 인간의 생활주변에서 살면서 나쁜 병원균이나 퍼트리고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지어놓은 곡식이며 음식을 먹어 치우고 그야말로 도움이 되지 않은 동물 중 하나다.

그런 쥐도 새끼를 낳아 키우면서 다른 동물의 침범을 막기 위해 토굴 속 깊은 곳 등 안전한 곳에 숨겨 두고 먹을 것을 물어다 먹이며 돌본다.

많은 비라도 와서 위험하면 비를 맞으며 입으로 물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고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살핀다.

하찮은 쥐 같은 동물도 어미와 새끼 혈육 동족 간에는 목숨을 걸고 서로가 서로를 돕는데 인간은 그 알량한 욕심 탐욕 때문에 자식도 부모도 형제자매 이웃이 따로 없이 재물 앞에서 악마가 된다.

그게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는 길이자 끝이다. 과욕 탐욕 때문에 높은 절벽 그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동거리는 형국이다.

인간은 욕심 탐욕으로 머지않아 끝에 이르겠지만 지구는 영원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없는 지구 생태계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다시 말해 악의 근원 탐욕은 결과적으로 인간을 종말로 그 종말의 앞날은 21세기말을 정점으로 지구가 불덩이로 변해 500년 이쪽저쪽이면 공룡과 다르지 않은 길로 접어든다. 악의 근원 탐욕이 가져다 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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