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교육 칼럼ㅣ

정인숙 교육학 박사, 특수교육 전공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 왕 27명의 평균수명은 46.1세이고 서민들의 평균수명은 35세 혹은 그 이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지표로 본 의약 50년 주요통계의 평균수명을 살펴보면 1970년 61.9세, 80년 65.7세, 90년 71.3세, 2000년 76세, 2010년 80.24세, 2020년 81세로 1970년에서 2010년까지 10년마다 약 4∼5세씩 평균수명은 증가하고 있다. 1970년 61.9세였던 평균수명은 50년 새 20년 가까이 늘어났고, 조선시대와 비교해 본다면 46년이 증가하여 두 번 인생을 살고도 남는 긴 수명이 된 것이다.

이처럼 길어지고 있는 수명과 함께 인간의 일생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1961년 11월 가족계획사업이 정부의 공식적인 시책으로 채택되기 전까지는 대부분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데까지 낳아서 10명 이상인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자녀를 낳고 양육하다보면 어느새 60세가 넘고, 막내는 10세 이전에 부모가 돌아가실 수 있기 때문에 안쓰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환갑(還甲) 잔치는 60세가 되면 정말 오래 살았다고 축하해주는 자리였으니, 1980년 이전에 죽음을 맞이한 어르신들은 태어나서 일하고 자녀 양육하고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짧은 생을 살았다.

2021년 현재에도 가족계획 전에 태어난 자녀들을 둔 부모들이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4∼5명이상의 자녀를 가진 어르신들이 많다 이 시대의 어르신들 역시 자신의 노후보다는 자식을 어떻게든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으로 모든 노력과 경제력을 쏟아 부어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출가시켰다. 그리고 비로소 ‘이제야 할 일을 다 했다’ 하고 허리를 펴보니, 늙고 병든 몸과 텅 빈 곳간의 힘없는 노인의 모습만 남았다. 그러나 수명이 길어져 제2의 인생으로 약 30년은 더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스스로의 대책이 부족하여 ‘노후에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녀는 많아도 부모를 모시겠다는 자녀가 없는 경우, 연로하신 부모로 인한 가족갈등이 많아졌다. 부모는 부모대로 어려운 시절 자식을 양육하며 겪었던 그 고난과 인내를 생각하면 ‘어찌 자식이 그럴 수가 있는 가‘ 섭섭해 하시지만, 자식은 자식대로 험난한 사회 속에서 먹고 살기도 힘든데 부모를 모시기에는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하고 심리적으로도 세대갈등, 의견충돌 등을 감당할 정신적 여력이 부족하다. 이와 더불어 자녀도 어느덧 60세를 넘었다. 어르신들은 푸념하듯이 ‘내가 오래 살아서 문제지 누구를 탓하랴’ 하신다. 현재 60대, 70대만 하더라도 시대적 변화를 실감하고 자신의 노후를 어느 정도 준비해 둔 사람이 있지만 80대 이상은 자식을 믿고 그냥 주어진 날들을 살아왔기 때문에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연로하신 어르신은 병원을 자주 다니게 된다. 동네병원은 혼자서 다닐 수도 있지만, 종합병원은 번호표 접수부터 검사, 진료, 예약, 진료 후 수납, 약국까지 절차에 따라 찾아다니며 혼자서 진료를 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자녀의 동행이 필요하다. 청각장애 진단을 위한 청력검사는 4번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며칠 전 4번째로 89세 엄마를 모시고 종합병원에 갔다. 드디어 청력검사와 진료를 마치는 날, 진단서 발급을 끝으로 필요한 서류를 모두 구비하는 마지막 과정을 진행하였다. 진단서를 발급 받기 위해서는 본인의 주민등록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애석하게도 엄마는 평소대로 병원에 왔기에 주민등록증을 챙기지 않았다. 직원은 “1층 민원발급기가 있으니 가서 엄마의 주민등록초본을 떼어오면 되는데 노인들은 아마 지문이 나오지 않아서 발급이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안내해 주었다. 그래도 ‘엄마는 도시생활을 시작한 지가 벌써 50년을 훌쩍 넘었기 때문에 지문이 그대로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을 안고 민원발급기에서 초본을 신청하고 지문 위치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인증실패가 나왔다. 거듭되는 인증실패로 옆에 있던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보지도 않고 “지문인증 안 되는 것은 제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많은 어르신들이 지문 인증이 안 되어 필요한 서류를 발급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걸음걸이도 불편한 엄마를 모시고 엄마 집에 다시 가서 주민등록증을 찾아서 병원에 와서야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민원발급기는 수요자를 위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수요자 중 일부라도 사용할 수 없다면 그 기능을 바꾸어서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본인이 ‘자식들을 위해 얼마나 애쓰며 살아왔는지‘ ’나이 들어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이렇게 애달프게 사느라 지문도 다 망가져버린 어르신들인데 민원발급기마저 홀대하여 제대로 걷기도 힘든 어르신을 더 힘들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노인의 인구는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런 시대 변화에 맞춰 사용기기 들도 AI시대에 걸맞게 사용이 잘 되도록 신속히 교체해야 하지 않을까? 민원기기들의 인증 방법을 최근 공항이나 동사무소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얼굴사진 등으로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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