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삼복더위 밤에 구름과 달이 아스라하니, 붓끝의 조화가 사람을 놀라게 하고 혼몽하게 하는구나.’. 마성린이 김홍도의 <송석원시사야연도>에 남긴 화제이다.

주변 환경을 과감하게 생략하여 시모임의 정취를 한껏 드러낸 이 작품은, 여백의 효과를 매우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한줄기 달빛으로 음영을 조절하여 사방을 드러내고 감추는 솜씨는, 풍경은 그윽함을 극대화한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시선을 집중시켜 한눈에 그 정취를 느끼게 하는 김홍도의 예술적 역량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송석원시사야연도>는 천수경의 집인 송석원에서, 시를 짓는 재능이 뛰어나 문학운동을 주도하던 중인들의 시모임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둥근 보름달이 뜬 밤, 옥류동 계곡에 모여 송석원시사에 참여한 시인들의 흥취는 마치 신선의 유람을 떠오르게 한다. 숲속 가운데 넓게 자리 잡은 이들의 사이로 달빛이 유려하게 흐른다. 등잔불, 소반, 술병을 중심으로 시인 묵객들이 둘러앉았고, 그 중엔 갓을 벗은 이와 반쯤 누운 듯한 이도 보인다. 풍류가 무르익은 모습이다. 돌아가며 읊조리는 시 한 수가 더해지며 자연스레 탄성이 나오게 되는 광경이다. 시모임은 낮부터 밤까지 이어져 낮에는 시를 짓고, 저녁에는 주안상을 차려둔 채 품평을 하며 예술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즐겼다. 추사 김정희도 이름이 난 뒤에 송석원시사의 품평인으로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모임으로 생각되거나 현장의 모습을 길이 남기고 싶은 경우에는, 유명한 화가에게 당시 상황을 전해주거나 현장을 답사하게 하여 이를 그리는 풍조가 있었다. 시모임의 회원인 김의현은 당대 최고의 화원이던 김홍도와 이인문에게 그림을 부탁하였고, 김홍도는 밤 풍경을 묘사하고 이인문은 낮 풍경을 포착하여 시첩을 꾸몄다. 이렇게 하여 음력 6월 보름날에 열린 송석원시사의 모습은 <옥계청유첩>으로 탄생하게 된다.

6년 후인 1797년, 미산 마성린이 이에 더하여 서문과 화제의 글을 쓴다. ‘내 어느 날 김의현의 유죽헌에 들러보니 책상에 옥계청유첩이 놓여있었다. 펼쳐보니 단원 김홍도가 맨 앞의 그림을 그렸고 고송유수관 이인문이 이어서 그렸으며, 다음은 여러 군자가 각기 시를 지었는데 무릇 그 화법의 신묘함과 시의 맑고 참됨이 난정수계나 서원아집에 비길 만한 것이었다.’

송석원시사는 신분, 취미, 나이가 비슷하고 가까이 거처하는 동류들이, 문학을 통한 교류와 나아가 그들의 끈끈한 결집을 위해 결성한 단체이다. 이렇듯 위향인(중인과 몰락양반)이라 불리는 이들이 전개한 집단적인 문학 활동을 통해, 기존의 사대부문학 외의 위향문학이 형성되어 조선의 문화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송석원시사야연도>를 보고 있노라면, 가벼운 한숨과 함께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뇌리를 가득 채운 복잡한 생각들도 잠시 멈춘다. 자유로움을 담고 울려 퍼지는 그네들의 웃음소리가 자연에 어우러지며 아름다움을 낳는다. 달빛 하늘 아래 풀벌레들의 연주와 시원하게 들이키는 곡주, 그리고 낭랑하게 들려오는 시 낭송.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는 시간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으니 나도 마치 그들에게 초대받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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