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서영숙의 미술세상ㅣ

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

빗소리를 들리는 여름밤 딸아이와 둘이서 팝콘을 한 봉지 펼치며 거실의 불을 껐다.

화면 가득 메워지는 금빛 찬란함의 영화 우먼인 골드를 다시 보기 위해

우먼인 골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에 얽힌 이야기로 유대인 마리아 알트만이 1938년 세계 대전 당시 나치 점령하에 오스트리아 정부에 강탈당했던 클림트의 작품들과 가족의 추억이 담긴 숙모의 초상화를 찾고자 국가를 상대로 반환 청구 소송을 했던 이야기다.

마리아 알트만은 20세기 초반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탕 제조업으로 막대한 부를 이룬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의 조카딸이다.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국민 화가이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적 컬렉터이기도 했다.

그는 클림트에게 자신의 아내를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 당시 빈에서는 부자 유대인들이 아내와 딸의 초상화를 주문 제작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클림트는 비싼 인기 작가였고, 이 작품에서는 화면 가득 유난히 금과 은을 많이 사용했다. 또한, 클림트는 원래 초상화를 오랫동안 그리는 화가로 유명했지만, 이 그림에는 특히 공을 많이 들였다.

이 그림의 모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는 빈 사교계 최고의 스타였지만 슬픈 삶을 살았다.

정략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낳았는데 하나는 세 살 때 죽고 둘은 낳자마자 죽었다. 본인도 마흔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뇌수막염으로 죽었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에서 사실적으로 그려진 부분은 아델레의 얼굴과 손, 어깨 부분이 전부이다. 그림의 면적으로 따지자면 전체의 1/12이 채 못 된다. 이렇게 작은 부분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나머지는 장식적인 무늬와 패턴으로 처리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아델레의 개성적인 면모를 표현하는 데에 클림트는 꽤 신경을 썼는데, 섬세하면서도 여린 인상과 강한 자존심이 돋보이는 표정과 손의 처리가 그렇다. 아델레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고 있고, 그녀가 이런 포즈를 취한 것은 자신의 오른손에 장애가 있어 이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아델레는 어릴 적 사고로 오른손 가운데 있는 손가락을 심하게 다쳤다. 남들의 부러움 어린 시선을 받아온 그녀였지만, 그녀한테도 숨기고 싶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클림트는 그녀의 상처를 자신의 따뜻한 시선을 얹어 매끄럽게 표현했다.

오랜 소송 끝에 모나리자에 비유되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를 돌려받은 마리아 알트만은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작품을 가져왔고 대중에게 공개할 것을 조건으로 판매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운 숙모 초상화를 자신만이 아닌 많은 사람이 관람하길 원했다.

거대 화장품 기업 에스티 로더 창업주의 둘째 아들 로널드 로더는 그림을 사들였다. 당시 그림값으로 치른 1억 3500만 달러(1416억 4000만 원)는 그 당시 미술품 거래 사상 최고가였다.로널드 로더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들 작품만 전시하는 ‘노이에 갤러리’라는 이름의 미술관을 설립해 보란 듯이 자신의 미술관에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전시했다.

영화 우먼인 골드는 초상화의 모델이 유대인이란 사실을 숨기기 위해작품을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우먼 인 골드>라는 제목으로 부르며 오스트리아의 보물이고 국가의 유산이라 주장하는 정부 측 사람들을 향해 진실을 외면한 사람들은 부끄러운지 알라 말한다.

이 대목이 낯설지 않다. 나 또한 공감되는 부분이 몹시 크다.

클림트의 금빛 찬란한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작품 속 그녀가 일어서면 일렁이는 금빛에서 금가루가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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