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신현승 칼럼ㅣ

신현승 자유기고가

아직 1월이다. 세심한 독자들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지난 주에 쓴 글이 눈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벌써 봄맞이라니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일주일 사이 날씨가 갑자기 봄날씨처럼 되어 버렸다. 그리고, 문득 입춘(立春)이 언제인지 보니, 그게 생각 외로 훌쩍 다가와 있다. 시간과 계절이 화살처럼 빠른 것이야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번 겨울은 정말 살같이 빠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 속의 겨울이었기에 그 살벌함은 화살촉처럼 지금도 상잔해 있지만, 어느 새 그 끝에는 깃털과 같은 부드러운 봄의 내음이 따라 붙고 있다.

사실, 입춘 정도에도 아직 날씨는 풀리지 않아 추운 것이 정상이고, 그것이 실제로는 더 바람직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이렇게 빨리 내왕하는 봄의 체취가 싫지는 않다. 원래 한국의 겨울은 삼한사온(三寒四溫)의 패턴이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어쩌면 설레발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곧 겨울이 가고 봄이 올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니겠는가?

입춘과 설날을 맞이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역시 집정리다. 특히나 요즘처럼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더욱 집안의 물건들과 배치에 신경쓰기가 좋다. 옛날부터 봄 맞이 대청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집안 물건들을 들이고, 버리고, 배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서양에서도 꽤나 알려진 풍수 사상은 최근에 와서는 특히 집 안의 인테리어나 물건 배치에서 큰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버리기’라고 생각한다. 겨우내 아니 일년 내내 한 번도 손이 가지 않았거나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은 과감히 버리는 편이 좋다고 한다. 그것은 과학적으로도 능률적으로도 지극히 옳은 일이며, 물건이 아깝거나 망설여지기도 하겠지만, 물건을 현명하게 버리는 일은 물건을 들이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이 개념은 또 최근 유행하는 미니멈 라이프(minimum life)와 관계가 깊은데, 물건을 버림으로써, 모든 것이 최적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같이 실내에서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시기에는 더더욱 이 중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물건을 버리게 되면, 그 이후의 단계인 새로운 물건 들이기와 배치하기가 수월해질뿐더러, 집안의 분위기도 한층 밝아지게 된다. 당연히 집안에서의 동선은 효율적이 될 수밖에 없다. 연말연시에 흔히 말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고 하는 말은 사실은 양력이 아닌, 음력의 연말연시, 즉 구정이나 입춘에 써야 더 어울리는 말인 것이다.

게다가 물건을 버린다는 행위는 지나치게 많은 물건들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는 의미로, 동양철학에서는 또 새로운 것들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일이다. 예로부터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것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의 현실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득 찬 차에는 무엇인가를 실을 수 없다. 차를 비워야 새로운 승객이나 짐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한 해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고, 봄이 새로운 시작이라면 그 최선의 실천은 집안 정리, 그 중에서도 현명하게 물건을 버리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만해 한용운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이것은 결국 죽음이 다시 생이 되는 그러한 동양철학적인 그리고 불교적인 사고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것을 계절로 환치하게 되면, 겨울과 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천을 우리는 물건을 정리하므로써 할 수 있는 것이다.

2021년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봄이다. 지난 해의 답답함과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들도 많을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가지신 분들도 많으실 것이다. 우리가 미처 손이 가지 못하는 물건을 현명하게 버리는 것처럼, 우리 마음 속의 미련과 집착, 걱정도 버리는 게 어떨까? 그것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것,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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