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겸재의 필법이 오묘하여 신령과도 통하니 백 척 반송이 늙은 중의 모습이구나. 몸소 가져와서 전하는 옛 친구 참으로 의미가 있으니, 추운 겨울에도 변치 않는 마음 또한 능히 푸르구나.’ 노백도의 그림 윗부분에 덧붙여진 심능태의 찬문이다. 심능태는 예백이란 호를 가진 이에게 이를 전하였다. 그림의 아랫부분엔 안중식이 김윤식에게 전하는 제화가 있어, 소장자와 기증의 흐름을 알 수 있다.

향나무는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데 압도적인 위풍이 느껴진다. 수목이 오래된 향나무는 겸재만의 짙은 먹빛과 빠른 필치로 되살아났다. 대담하게 휘어진 둥근 가지 두 개는 자유롭게 퍼져나간 형상을 하고 있다. 땅의 기운을 받고 옆으로 꿈틀거리는가 하면, 위로는 솟구치기까지 하여 그 활력이 넘친다. 끝 가지는 둥근 곡선으로 말아가는 듯한 모양으로 조밀하게 점점이 붓으로 찍었으며, 가지에 달린 잎은 또 어떤가. 잎 부분은 옅은 담채로 칠한 후, 그 위에 다시 한번 하나하나 점묘로 연출하였다. 무성하여 그 생명력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가 보는 나뭇등걸의 굽은 형태는, 마치 초서체로 쓴 ‘목숨 수(壽)’와 유사하여 장수를 표상하는 모양새다. 그 당시의 임금이었던 영조의 장수를 기원하며, 웅건함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화폭에 담은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이러한 사조가 점차 민간에도 영향을 미쳐, 노인들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들이 널리 퍼졌다. 예부터 송백은 오랜 연륜과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기에, 이런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노백도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무줄기의 선은 중첩된 붓질로 가장자리 양옆의 윤곽선을 진하게 표현하고 있다. 줄기 가운데 부분은 하얀 공간을 남김으로써, 대비로 인한 입체감을 나타낸다. 나무껍질의 질감은 세밀함을 더한 주름으로, 꼼꼼하게 화폭에 담았기에 가지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나무 끝마디는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이 연상되는데, ‘쉬지 않고 살아간다.’라는 의미를 담은 당초문의 형상을 하고 있다. 또한 ‘궂은일과 좋은 일도 함께 감싸며 산다는데 더 가치가 있다’라는 의미도 담겨있어, 노백도가 세월 풍상을 오롯이 이겨낸 나무임을 짐작하게 한다. 힘차게 틀어 휘어 올라간 줄기의 역동성은, 진두지휘하는 대장군처럼 강대함이 느껴진다. 마치 용트림하면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과도 같은 기세다.

노백도는 겸재 만년 수작의 하나로 당당히 꼽힌다. 오랜 세월을 버티면서도 푸르름을 남긴 활기 있는 모습, 힘찬 생명감으로 꿈틀거리는 형태, 자신감으로 왕성하게 이룬 독특한 사의는 마침내 기운 생동한 작품으로 표출되었다. 이를테면 겸재의 자전적인 그림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힘든 시기에 노백도를 바라보며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기운찬 푸름 속에 녹아있을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마음을 상쾌하게 한 후, 올해의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의지를 다져보는 것이다.

저작권자 © 안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