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서영숙의 미술세상ㅣ

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

야수주의 대표 마티스 입체주의 대표 피카소, 실제 둘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았다. 둘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선의의 경쟁을 한 대표 작가이다.

마티스가 존재감을 과시하던 그 시절, 미술 신동이란 소리를 들으며 자란 피카소의 자신감과 야망은 하늘을 찔렀다. 그는 파리 미술을 평정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조국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다. 당시 미술계에서 피카소는 무명이자 신인이었다.

그런 그가 살롱 도톤 전시회에 걸린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결심한다. 파리미술계를 평정하기 위해선 마티스를 꺾어야 한다고,

그러나 마티스는 1905년 1년 전 사망한 세잔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작품 (푸른 누드)를 발표해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이에 경쟁심을 느낀 피카소는 고심 끝에 그의 문제작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하게 된다. 5명의 벌거벗은 누드의 여인들은 세잔의 (수욕도)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들이 연구하던 원시 조각상 같은 처녀들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업을 한다.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가운데 두 여인은 최초의 구상 단계를 유지하나 양쪽의 셋은 신체의 조각들을 섞어 조합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마티스가 (푸른 누드)를 두 개의 시점으로 사용한 데 비해 피카소는 시점의 개수를 무한대로 확장 마티스의 다시점을 극단적으로 분해해 새로운 회화의 장을 연 것이다.

피카소가 이 작품을 구상하기까지 100여 장이 넘는 소묘를 그리고 무수한 덧칠 끝에 이 대작을 완성했다.

아비뇽의 처녀들 속 여인은 바르셀로나 아비뇽 거리의 매춘부인데 남성을 유혹하는 여인의 모습이 아닌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모습이 있어 그의 동료나 선후배들은 혹평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마치 부서진 유리 파편 같다는 아비뇽의 처녀는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금세기 최고의 작품이 되었다.

회화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린 천재 화가 피카소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않고 수많은 실험의 결과물이 걸작을 탄생시켰다.

살아가며 때론 원치 않는 경쟁자를 만나 마음고생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역사에 남을 위대한 위인 뒤에는 이를 계기로 더 피나는 노력 끝에 커다란 업적을 이룬 경우가 많다 나의 현재 어려움이 나중에 큰일을 하는 초석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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