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애국가의 한 소절이다. 이렇듯 소나무는 예부터 한민족이 귀히 여겼던 나무였다. 세한삼우(歲寒三友), 사우(四友)의 일원으로 분류하여 문인들에게 찬미의 대상이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소나무는 십장생의 하나로 꼽히는 것은 물론, ‘송수천년’이라 하여 천 년을 사는 나무로 알려져 사람들은 앞다투어 소나무를 그려내고 완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직단은 왕조의 복락을 기원하는 공간이다. 토지의 신인 사(社)와 오곡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낸 곳이다. 민생의 안정을 바탕으로 국가를 통치하려는 민본주의적 이념이 드러나는 장소다. 결국 사직단에 심어진 노송이란 정치철학적·한국사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선의 <사직노송도>는 바로 그러한 대상을 화폭에 담아낸 그림이다.

<사직노송도>는 일체의 다른 배경을 배격하고 소나무 한그루만을 다루었다. 한편 노송에 한해서는 가지를 떠받들고 있는 지지대까지 그려내어 노송의 묘사에 한껏 공을 들였다. 이 노송은 전형적인 반송의 모습이다.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구불구불 휘어 돌아 뒤틀리고 제멋대로 만들어진 수세에서, 수많은 시간 속에 온갖 풍상을 꿋꿋하게 견딘 소나무의 연륜을 느끼게 한다. 모양새는 줄기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이 흐르고 땅을 스치며 다시 솟아오르는 형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세월을 표상하는 것처럼 옆으로 유구하게 뻗어나간다. 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왜곡되어 보이기도 하나, 그 곡선의 흐름은 유연해 보인다.

 

정선은 받침대에 의지하고 선 소나무를 어떤 생각을 하며 그렸을까? 굳건하게 뿌리 내려 살아온 노송처럼, 조선왕조도 굳건하고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그린 것이 아닐까 한다. 세 갈래로 뻗어 있는 노송은 왼쪽 가지가 부러졌는데, 표면은 상처가 있지만 속은 끈질기게 살아있다. 그 중, 곁가지에 새롭게 움튼 싹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이렇게 약동하는 생명력과 더불어, 소나무의 대표적인 속성으로 꼽혔던 것은 벽사력이 있는데, 재액과 환난을 마주하여 이를 헤쳐나가고자 했던 세인의 소망이 투영된 것이다. 국가의 생존과 번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많은 세월 풍상에 노출되면서도 상록을 유지하고 굽어간 노송처럼, 정선은 조선이 전란과 천재지변을 극복하고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천년사직’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이를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정선은 <사직노송도> 외에도, <노송영지도>와 <노백도>를 남겨 소나무의 강건한 기상을 담아내기도 하였고, 진경산수화에도 소나무를 채워 넣었다. 그 경우에는 <사직노송도>처럼 정밀한 묘사보다는 속필을 활용하여 활달한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표현했다. 자연의 이치와 생명력을 훌륭하게 포착함은 물론, 자신의 필력과 재주를 보태어 이런 역작을 남겼으니, 과연 화성(畫聖)의 경지에 다다른 이라고 할 만하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뒷산 솔숲을 거닐며, 어릴적 동요를 흥얼거려보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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