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한정규칼럼ㅣ

한정규 문학평론가

사랑과 증오는 대치되는 말로 사람이 갖는 마음씨다. 사랑은 배품을, 증오는 미움을, 바탕으로 한다. 사랑을 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반면 미움 증오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는 직접적이기도 하지만 간접적이기도 또 개별적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면서 자기와 무관하기도 하다.

그런 사랑과 증오에 대해 17세기 프랑스인 철학자 스피노자는 그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했다. 스피노자는 천국과 지옥은 어리석은 자가 인정하는 미신에 불과하며 인간의 영원히 불멸하다고 믿지 않다고 했다.

또 그는 성서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조작이지 하느님의 계시가 아니라 했다. 뿐만 아니라 종교는 조직화된 것으로 무지, 두려움, 편견을 파는 장사꾼이라고 비판 신은 자연이라며 자연과 동일시하고 신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랑은 외부적 원인에서 비롯되는 쾌락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한 증오도 외부적 원인에서 비롯된 고통일 뿐이다고 했다.

스피노자는 희망 두려움 그 모두도 하나의 생각이 낳은 산물이라 했다. 다시 말해 사랑과 증오는 외부요인에 의해, 희망과 두려움은 하나의 생각이라 했다.

희망은 미래 또는 과거에 대한 환상에서 시작 그 끝을 알 수 없는 변덕스러운 위안거리에 불과하다고 했다. 반면 두려움은 확신할 수 없는 환상에서 시작되는 변덕스러운 고통거리며 두 감정에서 의심이란 부분이 제거된다면 희망으로 자신감이 되고 두려움은 절망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사랑도 증오도 외부요인에서 온다며 사랑하는 대상의 속성에 따라 행복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증오 또한 증오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근세 정당정치가 발달하면서 국민들 너나없이 모두가 덩달아 이유 없이 남을 증오하기도 하고 미워하며 편 가름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과거사를 두고 친일파니 하며 편 가름을 또 좌니 우니 하며 민주 반민주, 자본의 공산이니 사유니 그러면서 편을 갈라 사랑을 하기도 증오를 하기도 한다.

특히 실력도 능력도 없는 어설픈 위정자들이 기회에 편승 한 자리 꿰차고 당치도 않은 말로 주변을 시끄럽게 한다. 그런 위정자 일수록 자신은 물론 가족만을 위해 사랑을, 바른말에는 증오를 일삼는다.

생각 없는 다수 국민들은 그런 위정자들 말만 듣고 그에 맞장구를 치며 춤을 춘다. 한마디로 위정자는 증오심을 보여서는 안 된다.

위정자 대부분은 국민을 내편 네 편으로 갈라 네 편에게 증오심을 보이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위정자는 내편 네 편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위정자다.

위정자가 내편 네 편을 갈라 사랑과 증오를 한다면 그런 자세는 위정자가 갖춰야 할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스피노자가 말한 그런 증오도 사랑도 지지 여부를 놓고 외부에서 온다. 결국 자기가 갖는 욕심에서 발단,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면 사랑을, 도움이 되지 않으면 증오를 한다. 특히 위정자는 그런 사랑 그런 증오를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편 가르기로 사람들을 끌어 모아 정치를 하는 위정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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