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기자칼럼ㅣ

신도성 시민기자

우리 민족에게 해마다 두 번의 큰 명절이 다가오는데 그중에 하나가 정월 대보름인 ‘설’이고 다른 하나는 8월 대보름 ‘추석’을 말한다. 명절을 대할 때마다 명절을 맞는 사람과 명절을 대하는 경우에 따라 받아들이는 의미는 천차만별이고 이는 참 신기한 일이다.

도시의 명절과 농촌의 명절이 다르다. 해외에서 유학하며 맞이하는 해외에서의 명절도 다른 의미를 지닌다. 또한 홀로 지내는 명절과 대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다르고, 풍성한 고기와 과일(肉果)가 있는 명절과 관광지에서 보내는 명절은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독자들은 추석명절이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명절에 대한 어떠한 추억을 지니고 있나? 마음 같아서야 일일이 방문해서 한사람씩 물어보고도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상상력을 발휘해서 독자의 마음을 읽어 보았다.

▲ 남자도 명절증후군을 앓는다. 명절증후군은 더 이상 여자의 전유물이라고 볼 수는 없다. 여자만큼 또는 그보다 더 많은 남자들이 직장인들이나 미혼남성들이 명절증후군을 앓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증상을 ‘후천성 명절불편 증후군’이라고 불러본다.

이러한 증후군의 증상의 특징은 단순히 생선전을 부치거나 음식을 준비하며 몸이 힘들고 마음에 부담감을 갖는 여성의 명절증후군보다 결코 작지 않다. 다만 남성의 경우 사회적인 분위기나 또한 여러 이유로 증후군의 증세를 표현을 못하고 감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표면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 일본 교토에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유학중인 학생의 말이다. “외국에 있다 보면 명절인지도 모르고 지나갈 때도 많고, 내 나라에서는 그리운 이들은 가족들과 다 모이는데, 나만 평범한 일상을 보내려면 씁쓸하기도 해요. 어린 시절의 명절에 대한 추억이 그리워서인지 명절 때는 여기 일본에서 한국음식점을 찾아서 아쉬움을 달래요. 명절풍습은 외국에서의 시각으로 보면 답답함 반, 그리고 부러움 반이에요.”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한국의 친척들과 메신저로 인사를 나누며 보내는 명절은 연례행사일 뿐이고 명절이 단순한 하루라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의미가 있는 날은 아니다.

▲ 농촌에는 대가족이 모이는 명절을 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비록 한복을 입고 명절에 모인 사람들이 과연 가족(家族)인가? 아니면 단순히 1년에 한두 번 밥 같이 먹는 식구(食口)인가? 고향을 가는 귀성길 교통체증을 피하려고 한밤중에 본가 또는 처가에 도착해서 아침에 밥 한 끼같이 먹고 숟가락 내려놓자마자 자동차타고 관광지나 온천으로 출발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가족이라고 말할 수가 있나 의문이다.

▲ 미래의 명절 모습이 아리송하다. 지금의 이런 추세라면 우리가 아는 명절의 의미가 급격히 퇴조되어 기존의 명절 개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조상 묘소의 벌초는 대행인에게 맡기고, 추석차례는 음식점 또는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가져오고 음식으로 휴양지나 콘도에서 차례를 드리고 전통풍습 대신 오락과 골프, 스키를 즐기면서 명절을 보낸다면 우리는 이런 날을 과연 명절이라고 불러도 되나? 아니 이런 오늘의 명절을 세시풍속으로 교과서에 언제까지 기록할 수 있을까?

추석명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돌아온 직장인과 자영업자의 많은 수가 명절 후유증을 겪는다.

심한 경우 가족 간의 불화로 법정에 서서 서로의 시비를 따지는 일이 발생했다는 얘기는 이제는 너무 보편적인 일이라서 뉴스 소재도 되지 않는다.

우리의 주거지가 개발되기 이전에 부락마다 한 집에 한 숟가락씩 절미(節米)를 모아서 명절에 떡을 만들어서 지역사회에서 서로 나누던 명절 풍속을 자녀들에게 어떻게 알려 주어야하는지,..

추모공원 납골당에 모셔진 조상의 유골에 아주 익숙한 자녀에게, 아니 그러한 추모공원 조차도 가기 싫어하는 자녀에게 조상의 묘소를 벌초하고 차례도 지내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어떻게 해서 명절을 명절답게, 의미가 깊은 명절로서 존치시켜야 하는지 우리 앞에 주어진 과제가 결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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