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근 칼럼

이민근 민생정책연구소 이사장/전 안산시의회 의장

행정은 전쟁이 아니다.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정정책의 수립과정을 적군을 말살해야 목적을 달성하는 전쟁의 준비과정과 같이 인식해서는 안 된다. 행정의 상대방은 물리쳐야 하는 적군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주간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정책을 둘러싸고 보여준 모습은 행정정책의 수립과정이 아니라 적을 말살하기 위한 전쟁을 준비하는 것과 같이 보였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발표에서부터 근거법률의 국회 통과까지의 모든 과정이 마치 적이 눈치 채고 대응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군사작전처럼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정부가 그동안의 부동산 정책실패로 인해 급등한 부동산 가격을 일시에 잡으려는 듯 강력한 규제정책들을 발표하자,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한 집권 여당은 그 근거법률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서 정부정책이나 근거법률들에 대한 별다른 심의나 숙의과정은 없었다.

정책의 발표부터 근거법률의 국회통과까지 한 달이 채 안 걸렸던 이번 정책과정에 대해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반발한 것은 당연하며, 찬성표를 던졌던 일부 야당마저도 통법부의 모습을 보여준 거대 여당의 모습에 우려를 표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을 찾고, 이를 해소함으로써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꾀한다는 것과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해 높아진 주거비용을 낮춰 서민들의 부담을 완화 시켜줘야한다는 정부 정책의 취지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어떠한 형태와 규모의 외부효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정책의 준비와 추진에 더욱 신중을 기했어야만 했다. 부동산 정책의 경우와 같이 현상의 원인과 정책의 결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이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한 경우에는 더더욱 신중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이는 행정부의 독주를 막고, 일방적인 정부 정책이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논의하라고 만들어진 국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회의 해당 상임위와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본회의를 거치며 정책의 시행으로 인해 정책효과와 그로인한 피해, 정책수립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과 해소방안 등을 충분히 논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부동산 투기’라는 이름 앞에서 생략된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을 막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물론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할 때가 있다.

때에 따라서는 과거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와 관련한 긴급재정경제 명령권 발동사례와 같이 신속함을 요구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해당될 것이다.

부동산 투기의 근절이나 서민들의 주거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은 중요하고도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수긍하지만, 국회 논의마저 무시하고 진행될 만큼의 시급을 요하는 문제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오히려 부동산 문제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중요한 사안이기에 정책을 준비하며 각계각층의 전문가들 간의 활발한 토의를 통해 정책의 문제점을 사전에 점검해야 했고,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과의 대화와 설득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는 점에서 이번 정책추진과정은 아쉽기만 하다.

한번 만들어진 정책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입는 국민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 주길 부탁드린다.

저작권자 © 안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