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2020년 7월 14일 백선엽 장군이 향년 100세로 영면했다. 머리 숙여 애도합니다. 1950년 6 월 25일 발발한 남북 간 전쟁에서 한국을 구해낸 영웅이다.

의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많이 길어져 보통 8·90년은 산다고 하지만 그래도 정신건강을 잃지 않고 100세를 살았음은 장수한 것이다.

중국이 낳은 사상가 노자는 생사를 초월한 사람은 오래 산다고 했다. 노자의 도덕경에 의하면 지인 자는 지하나 지지자는 명하며(知人 者는 智하나, 自知 者는 明하며), 남을 이기는 이를 힘이 센 사람이라 하면 자기를 이기는 이를 강한 사람이라 했다.

또 승인 자는 유력하나 자승 자는 강하다(勝 人 者는 有力하나 自 勝 者는 강하다) 했다. 노자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은 장수한다고 했던 말과 같이 백선엽장군 그는 건강한 정신으로 장수했다.

백선엽 그는 한국이 낳은 위대한 장군이다.

혹자는 장군이 우리민족 북한을 향해 총을 쏜그런 사람이 현충원에 가선 안 된다. 우리민족에 총을 쐈다고 현충원에 묻히느냐?

또 다른 사람은 저분이 6·25 전쟁 때 우리민족 북한을 향해 총을 쏴 승리했다고 그 공을 인정 현충원에 묻히느냐?

일제강점기 독립군토벌간도특설 부대출신인 백선엽을 전쟁영웅이라는 명분으로 대전현충원에 묻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또수천억 재산을 두고 자식들 간 분쟁을 한 인물 이라는 등 그런 저런 일로 적지 않은 험담을 하고 있다.

이유야 어떻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1950년 6월 25일 한민족이 둘로 갈려 전쟁을 했다. 불행한 일이었다. 민족이 둘로 나눠 싸우게 된 배경에는 일본이 있다. 일본은 1910년 8월 29일 순종을 억압 한일합방 강제로 군대를 해산시키고 외교권을 박탈 36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했다.

그러던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미국을 중심 으로 한 연합군에 항복,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게 됐다. 그때 독립이 되면서 북쪽에 중국을 등에 업은 김일성이 공산주의사상으로 무장 한반도를 북위 38도선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 민공화국을 세워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한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고 계속 남하했다.

한국은 싸움다운 싸움도 하지 못하고 낙동 강까지 밀렸다. 경북 칠곡 이하 대구와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를 북한군이 점령했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면 한국정부는 끝장이 날 지경 이었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전세를 뒤 짚어 놓은 것이 경북 칠곡 왜관지구 다부동 싸움이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장병들의 사기가 떨어져 패전 직전에 백선엽장군이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며 앞장 서 전진했다. 그래서 전세 를 뒤집어 북한군을 패퇴 우리 군이 승리 함락 직전에 나라를 구했다. 그 장본인이다.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장군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현격한 공을 세운 공과를 가진 장군이 세상을 떴다.

2020년 7월 14일 고국을 뒤로 한 채 영원히 이 땅을 떠났다. 그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분향소를 찾았다. 특히 미국지원 사령부 스티브 앨런 사령관 등 사령부 소속 간부 10여명이 찾아 분향을 하고 미국 내에서도 백선엽장 군의 영면을 애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장군의 죽음 앞에 일제 때 독립군을 겨냥 총을 쏜 친일의 앞잡이였다는 그런 사람을 6·25전쟁 때북한군을 퇴패시켰다는 공만으로 비록 대전현충원이라 하더라도 현충원에 묻어서는 안된다 라며 반대를 했다.

그런가하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서는 정부가 국민장을 하지 않아 우리라도 영웅을 예우해 드리자며 분향소를 설치 손님을 맞이했다. 백선엽은 친일파이자 우리 동포인 북한군을 겨냥해 총을 쏜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며, 그가 국가를 위해 세운 혁혁한 공마저도 무시해야 한다는 점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떻던 백선엽장군은 무관으로서 대한민국에 공헌한 건 사실이다. 그 점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 친일 등 공과를 말한다면 국립현충원에 안장돼서는 안 되는 사람 적지 않다. 다 저버리고 보다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 객관적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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