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이 보소 하늘 님! 요즘 것들 뻔뻔스럽기로 너무들 하는 기 아니요. 당신은 알지?

소가죽 말가죽보다도 더 질긴 가죽 뒤집어쓰고 껑충껑충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여길 종길 광장 그곳 배경삼아 날 뛰는 것 보소.”

잠을 자는데 이른 새벽 무엇이 얼굴을 툭툭 치기에, 그 누구처럼 ‘왜? 이래!’ 하고 눈알 뒤집어 까고 손 저으며 쳐다 보았더니 어둠 속에 40여 년 전 단장 해 놓은 너덜너덜한 색 바랜 종이만 보이더라. 그리고 떠올려 보았다.

나 같은 소인배에게 이른 새벽 왜 이런 생각, 이런 일이 있었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요즘 사람들 땅 냄새 못 맡고 땅 딛지 못하고 하늘 높은 곳에서 하늘만 보고 쾌쾌한 매연 냄새에 미세먼지 뒤집어쓰고 중국 발 내몽골에서 보내온 황사에 시달리며 흙냄새 대신 하늘 냄새만 맡고 살다보니 오락가락한 정신 탓인가? 싶지만 그래도 그렇지 싶어 허공을 향해 속마음 내뱉어 본다.

예로부터 이런 말이 전해 온다. 호랑이는 죽 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그 말은 대포보다 고사포보다 핵무기보다도 더 무서운 말이다.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사람 이미 오래 전 죽어 썩어 없어져 버린 사람, 그 사람에게 손가락질 하며 퉤퉤 침을 뱉고 그게 두려운 줄 알라, 그러니 그런 이름 남겨서는 안 된다. ‘요 주의’ 그 말이다. 알았느냐? 요것들아!

꽃이 사람을 위해 피는 것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부질없이

꽃을 보고 웃으며 즐거워하고

새들이 사람을 위해 우는 것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부질없이

새를 보고 노래한다.

나비가 사람을 위해서 날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부질없이

나비를 보고 춤을 춘다.

과학문명을 일구며 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인간이 어찌 꽃보다도, 새 보다도, 나비보다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그들을 따라 살아야 하겠는가?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세상 살아가는것 더 한 번 더 생각하고 살자고. 누군가 새벽어둠 속에서 내 가슴을 친 그 소리를 적어 보았다.

그 소리에 깨어 그래 맞아 맞아 그 말 되새기며 써 보았다. 우리 모두 함께 되새겨 보자고 외친다. 그리고 아침 신문을 펼쳐 들었더니 이런 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쓰였더군. 대문짝만하게. 이해찬 “굴복 말라”, “與, 윤미향 구하기.”

누가 누구에게 굴복 말라는 것인지? 공당인 집권 여당이 혹 윤미향 더러 국민에게 굴복 말라는 것인지? 아니면 집권 여당 위정자들 국민 에게 굴복 말라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또 윤미향 구하기라니 그 사람 어찌 그리 대단한 것인지? 윤미향 아닌 국민들을 구해야지?

네 말 틀리지 않소? 모두들 너무한 것 아닌가 싶다.

자! 이쯤해서 우리 다 함께 이 말을 되새겨 보자. 중국 제나라 때 있었던 일이다.

맹상군이 풍훤을 자기 고향 설 지방에 가 빚을 받아 오라고 했다. 그도 흉년이 들었는데. 그러자 “풍훤이 빚을 받아 어떻게 할까요?” 물었다. 맹상군이 “우리 집에 없는 것을 사오시오”라 했다.

풍훤이 설 지방으로 가면서 빚 문서를 불태 워버렸다. 그리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맹상군이 어떻게 된 것이냐 묻자 풍훤이 “빚을 모두 받아 분부대로 이걸 사왔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예 바로 이것입니다.” 하고 의義를 말했다. “재물 대신 의義로써 민심을 얻게 됐으니 군주에게는 재물보다 더 큰 이득을 얻은 게 아닌 가요” 그렇게 말했다.

그 얼마 후 맹상군이 재상직위를 박탈당하고 빈손으로 설 지역으로 돌아가게 됐다. 맹상군이 설 지역으로 가자 백성들이 모두 길로 나와 대환영을 하며 서로 모시겠다고 했다.

그 때야 비로소 맹상군이 풍원의 뜻을 알았다는. 현명하다는, 그들, 니들 맹상군같이 어리석게 그래 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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