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노자의 도덕경에 ‘교만한 도적’이라는 말이 있다. 근대국가에서는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위해 각종 규약이 있다. 그 규약의 중심에 헌법이 있다.

그리고 헌법을 벗어난 행위를 하는 것은 곧 위법한 것으로 무효 또는 처벌대상이 된다. 2천20년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지구촌 곳곳을 들쑤셔 인간이란 인간들 너나없이 벌벌 떨며 힘들어한다.

그 때문에 엄동에 손발이 꽁꽁 얼 듯 세계 경제가 불황으로 치닫고 있다. 모두 돈 버는 게 신통치 않아 삶!

힘들어 아우성이다.

이골 저 골에서 골골이 사는 사람들 당장 돈벌이가 신통하지 않아 죽기 살기로 헐떡이는데 그것 아랑 곧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게 노자의 도덕경에서 말하는 ‘교만한 도적’이다. 그런 교만한 도적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수가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 교만한 도적이 정월 대보름에 부잣집 팔띠기 널뛰듯 한다. 웃기는 것이 그래 니들이 나를 어떻게 할 건데 ‘교만한 도적’이 라는 이 완장 안 보여, 그런 완장 찬 팔띠기가 있다.

완장 두른 팔띠기는 몸에 비단 옷을 걸치고 권리인가 권한인가? 그것을 믿고 찍찍 걸이며팔 다리 휘두르고 날개 짓 한다. 마치 멕시코의 혁명가 판초빌라 또는 임꺽정이 같다. 완장도 안 찬 또 다른 팔띠기도 믿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완장찬 그 못지않게 날 뛴다.

세상에 먹을 것이 없어 끼니를 거르는 자가 득실거리는데 완장 찬 그들은 식탁에 귀한 음식 고기반찬 좋을 때 실컷 배 터져라 먹고, 티끌을 끌어 모아라 한다.

한푼 두푼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돈벌이 안 돼 힘들어 하는데 그들은 힘든 것 아랑 곧 하지 않고 잘 산다. 그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온 교만한 도적 같아 보이는데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혹시라도 그렇 다하면 이제 그만 날뛰었으면 한다.

어느 양반나리께서는 가족 포함 일가친척 사돈네팔촌 그것도 부족 주변사람들까지 쓸어 모아 이 짓, 저 짓 했다니 그 협의로 그 귀중하고도 귀중한 자리 자自발이던 타他발이던 아니면 개犬발이던 잘렸으면 잘린 그 자체 만으로도 협의에 상당한 이유가 있음 그렇게 증명이 됐음에도 아니라고 발 빼고 이곳 저곳 들쑤시며 두꺼운 낮 곧게 세우고 한반도 한쪽 큰 마을 작은 마을 골목골목 휘젓고 다닌다.

그것만으로도 참으로 안타까운데 그 자에게질 수 없다는 듯 올빼미 눈처럼 부라리고 독약 집어 먹고 죽은 쥐 잡아 먹은 고양이처럼 앙칼진 소리로 내게도 주목 좀 해 주세요. 하고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외치며 또 다른 교만한 도적이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하늬란 말거짓 중상모략이라 한다.

늙어 오락가락한 사람 말만 믿고 허물 뒤집어씌운다고 난 아니야 그러면서 손 젖는다.

경기가 거지같아요? 했던 어느 상인 말마따나 먹고 살기 힘들어 죽을 지경인 국민들 두고 또 다른 색동 옷 너덜너덜 겹겹이 입은 교만한 도적이 곳곳을 기웃거리며 날 뛰고 있으니 이 세상이 어찌될고 사람들 한숨소리만 하늘을 찌른다.

행여 북쪽 그곳에서 혈기 왕성한 젊은이 때가 왔다 오판이라도 하고 남쪽 하늘을 향해 불꽃 축제라도 하겠다. 할까? 그것이 걱정된다.

제발 교만한 도적들 그만 정신 좀 차렸으면 한다. 눈 뒤 짚고 보며 욕하는 니들 심정, 그래! 그래!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잘 못한 너희들 보고만 있잖니 짜증스러워 그렇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꿈속 에서 어느 백발 늙은이가 지팡이 땅을 뚝 뚝치며 하는 말이었다. 왜? 그런 꿈이 이 소인배에게?

그리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신문을 펼쳐보니 그 젊은이 여동생이 불쑥 나타나 하늬란 말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 보다 그짓을 못 본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 그러며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그러자 우연이겠지만 대북전단 살포금지법률(안: 가칭)을 준비 중이라고 하는 기사가 눈을 어지럽게 했다.

요즘 교만한 도적들 그들 때문에 세상 옳고 그름 판단이 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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