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삼 안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그놈의 멸치 안주 이야기 좀 고마해라’ 친구들의 비난이 쇄도하고 있어서 빨리 마무리 하겠다.

아무튼 병장들이 알려준대로 대멸치를 위에서 밑으로 좌악 찢어 생고추장에 찍어서 한입에 넣는데 쓸만한 술안주가 없던 군대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멸치는 너무 빠닥빠닥 건조된 것보다는 그늘에서 꿉꿉하게 말린 놈이 더 향긋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 세상에 으뜸은 고추장에 대멸치였다.

멸치 육질과 생고추장이 막걸리에 섞여 목을 타고 또르르 내려가며 내장 벽을 적시자 알코올 액체는 실핏줄을 타고 온 몸에 싸르르 퍼져나갔다.

술이라는 게 정직하기 이를데 없어서 마시자마자 즉시 찬바람에 얼었던 몸을 땃땃하게 데펴 주었고 나는 하늘같은 병장님들이 따라주는 술잔을 황공한 마음으로 연거푸 받아 마신 다음 소총과 철모를 원위치 시킨 뒤 ‘충성’ 하고 무사히 보초 임무를 종료했다.

나는 매콤비릿한 멸치 맛에 미련이 남아 평소 가까이 지내던 수송부의 운짱 조 일병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 친구 가지고 있는 읍내 주점집 정보가 장난이 아니었다. 골목골목 이집 저집의 사정을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잘 됐다 싶어 시간 있으면 나 좀 델꼬 가라고 꼬셨다.

마침내 기다리던 주말, 아침 일찍 조 일병과 나는 그놈이 잘 간다는 단골집에 들어가 옥수수 막걸리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아 히죽 거렸다.

탁자에는 생고추장을 곁들인 대멸치가 있었고(또 멸치), 고구마를 껍질 벗겨 사카리 물에 푹 재웠다가 세로로 길게 죽죽 썰어 넓적한 접시 위에 가지런히 눕혀왔는데이 또한 술안주로 손색이 없었다.

조촐하게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있는 우리를 지켜보던 주인아주머니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후라이판에 기름을 뚜루루 돌려 녹두 빈대떡을 재질재질하게 부쳐 당신 몸매보다더 넉넉하게 담아왔다.

쪽파를 길게 썰어 넣고 두툼하게 척척 버무려 부친 빈대떡을 보니 멀리 신안에 있을 누나가 생각났다. 누나는 이슬비가 내리면 바지런히 움직여서 빈대떡이며 뻥튀기며 엿강정이며 잔뜩 만들어서 이웃 사람들에게 돌리고 먹이곤 했었다.

그런 빈대떡을 군대에서 보았는데 빈대떡은 그 뒤 제대하고 사회에 나온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만만하게 찾는 베스트 안주가 되어 있다. 우리는 막걸리 몇 병을 더시켰고 주인아주머니는 서비스로 소주 1병을 들고 아예 우리 탁자에 합석을 하고 말았다.

그런 자리에는 정다운 아주머니가 동석해주 어야 제격이라는 희한한 사실을 난생 처음 알았다.

걸쭉하고 욕설 섞인 농담이 일품이었던 그아주머니 백발 할머니 되어 잘 계시는지 궁금하다.

이처럼 난 ‘술이라는 친구’를 군대 탄약고 앞에서 사소하게 만나 인연을 맺은 후 전방 소도시 장터를 돌면서 가까워졌고, 그 후 대통령이 몇 번 바뀌고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되고 코로나가 급습한 2020년 지금까지 변함없는 동행을 이어오고 있다.

세월은 유장하고 세상은 굴곡이 많았지만, 그 세상 뚫고 온 술은 변함없이 초지일관하고 의리 있는 벗이로다.

그래서 앞에서 군자삼락에 버금간다고 말했음이다. 어느 진정한 주선(酒仙)이 있어 강릉 경포대의 밝은 달을 술잔에 빠뜨렸다고 했던가.

그런 경지에 미치지 못하는 나는 주당도 아니고 주객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이런 것을 생각하면 한 옛적에 비록 멸치 안주에 초라한 술좌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콸콸콸콸 따라주며 인연 맺어준 탄약고 양지쪽 병장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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