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성 시민기자

유명인사의 개인비리나 국가 지도자 또는 대기업 총수의 갑(甲)질이 알려졌을 때에 분노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한 사실을 알아보기도 전에 어떠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

댓글이 대표적인 것 중 하나다.

그나마 아날로그 시대에는 이런 경우가 비교적 뜨문뜨문 있었다면 디지털이니 인터넷이니 하는 것이 생기고 나서는 유명한 인사나 기업의 총수가 비난받는 경우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어떤 사람이 갑자기 유명해지기도 하더니 며칠이 지나지도 않아서 바로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이라는 이름의 마음의 뭇매를 맞고 쓰러져 있다.

어떤 경우에는 개인 혹은 단체의 비리가 사실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사실이 엉뚱하게 잘못 알려지고 퍼져서 정작 당사자는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골병이 들어 생사를 오가는데 사실은 알려진 것과 다르게 엉뚱하게 터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다면 우리는 남을 비난하는 마음의 돌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 지도자나 기업 총수의 비리를 용서 해도 안 되겠지만 잘못된 행위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더욱 옳은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어떤 비리에 4천만 국민이 8천만 개의 눈으로 쳐다보고 비난한다면 어떤 천하장사인들 견뎌낼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예수는 말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필자는 덧붙인다.

“그리고 네 마음속에 있는 쓸데없는 마음의 돌을 바닥에 다 버려라.”

지난 정권 국정농단의 중대한 부분의 하나인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정부에서 문화예술계의 활동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기준에 따라 선발하고 지원하며 해당 예술단체는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지원을 획득하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예술단체가 지원을 받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단체가 지원을 신청하고도 한 푼의 정부예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도움’의 다른 표현이 ‘간섭’이다. 우리는 도움을 준 만큼 간섭하려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도 사실은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간섭하려고 하는 것이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지원도 마찬가지다. 예산 지원을 일종의 간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산을 지원해준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예산지원을 결정하는 사람이나 기관은 지원받는 개인이나 단체를 간섭하려고 시도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지원해주는 개인이나 기관이 마치 지원받는 예술 단체를 통제하려고 하거나 스스로 알아서 바닥에 기도록 한다면 이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순수성을 왜곡시키고 힘이 정의가 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이다.

대기업을 운영하는 재벌 총수가 예술단체를 후원하거나 정부 고위관료가 예술단체에 예산지원을 결정할 때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면 이야말로 문화예술계의 블랙리 스트 같은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남에 대한 간섭이 지나쳐 비난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함 이다.

우리는 마음의 돌이나 내면의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최근에 대기업 총수 또는 고위 공무원의 꼴보기 싫은 갑(甲)질에 분개하던 우리가 다른 형태의 슈퍼 을(乙)질을 하면서 남의 아픔을 못 느끼는 경우는 없었으면 한다.

오히려 이러한 방법으로 을(乙)들의 집단적인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것은 아닌가? 이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오늘 아침 출근 전에 마음을 열고 쓸데없는 비난의 돌을 다 버리고 집을 나서자.

전보다 훨씬 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직장이나 학교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마음과 몸이 가벼우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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