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너나없이 일상생활 중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충고를 듣기도 하고 또 충고를 하기도 한다.

그 충고 듣기 싫지만 들어야 한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완벽할 순 없다. 지위가 아무리 높고 많은 권력을 누려도, 재물이 더없이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족해 하는 건 다를 바 없다.

그게 모두 과욕이라는 씨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많은 가르침이 필요하다.

그 가르침 중에 잘못된 것을 지적 충고라는 것이 있다. 충고는 듣는 이에게는 거슬린다.

좋은 약이 입에 쓰듯 충고는 꾸짖는 것과 같아서 귀에 거슬린다. 충고와 관련 철학자 힐티는 충고가 하얀 눈과 같아서 조용히 내릴수록 마음속에 깊이 스며든다고 했다. 그래서 충고를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듣는 것 또한 매우 어렵다.

충고 그러면 겸허하게 들으려 하는 자세부터 안 된다. 듣는 사람 자신에 따라서 그래 당신이 무엇인데 아니면 너나 잘해라,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그런 생각부터 한다.

그래서 일본인 시루스는 충고는 조용하게 칭찬은 크게 하라고 했다. 충고를 하는 수단을 중시하라는 말이다. 또 공자가어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충고가 좋은 약과 같다고 하며 그래서 충고는 귀에 거슬린다. 하지만 충고에 따른다면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쓰여 있다.

위정자 옆에 많은 사람이 권력을 쫓아 따른다. 위정자들도 인간이라서 그들 대부분은 충고를 싫어한다. 그들은 충고 보다는 칭찬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들 칭찬을 일삼는다.

문제는 칭찬만 좋아하며 듣다보면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만 득실거린다. 그런 사람들과 놀아나다 보면 눈먼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된다.

훌륭한 사람은 충고를 귀담아 들으며 그것을 냉정하게 떠 올려 본다. 그리고 개선할 건개선한다. 훌륭한 사람,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사회를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냉정하고 거짓이 배제된 충고가 필요 하다.

그래서 높은 권력을 누린 위정자, 재물이 많은 재력가 그들 됨됨이가 중요하다. 충고 아닌 아부, 칭찬만을 좋아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진흙탕으로 빠져든다.

인류 역사가 그를 말해 주고 있다. 한반도에 서만도 한민족에서만도 수없이 많았다. 근세는 물론 최근에도 그런 일이 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속될 것 같아 안타깝다.

국가가 어느 날 갑자기 망하는 것 아니다.

외침에 의해 갑자기 망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음식물 주변에 파리 떼가 모여들 듯권력 주변에 까마귀 같은 떼거지들이 모여든다. 그들이 돌리는 상모놀이에 정신을 놓고 춤을 추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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