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성 시민기자

예술가곡 ‘봉선화’는 홍난파가 일본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고국에 돌아와서 1920년 4월 28일에 기악곡으로 만든 것이다. 그의 첫 창작소설 ‘처녀혼’ 도입부분에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삽입되어 있다.

‘애수’라는 제목의 이곡에 1926년에 김형준이 가사를 붙여 만들어진 곡이다.

이곡은 홍난파가 편찬하고 연악회 출판부에서 1931년에 발행한 세계명작 가곡선집 독창곡파트에 수록되었고 1927년 7월 24일에는 소프라노 김영숙이 불러서 경성방송국에서 방송 되었다. 음반으로는 1932년 1월 20일에 일본 콜롬비아 축음기 주식회사와 1937년 9월과 10월, 그리고 11월에도 일본 빅타 축음기주식회사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모차르트가 1779년 작곡한 ‘바이올 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b장조 K.364’의 2악장과 선율및 화성은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와 유사한 부문이 있어서 모차르트의 곡을 무심히 듣고 있노라면 홍난파의 봉선 화와 비교해서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2004년 6월 18일, 한국예술종합학교 (KNUA)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기연 주회에서 모차르트의 곡이 연주되기도 하였다. 모차르트 특유의 깔끔하면서 우수에 젖은 선율이 담긴 이 작품은 여러 영화와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우리에게 친숙하다.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신포니아 콘체 르탄테를 말하면 흔히들 모차르트 작품의 고유명사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원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는 몇 개의 독주악기를 지니지만 악장 구조나 양식이 교향곡 형식으로 써진 작품유형을 의미하는 것이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협주교향곡이다.

1779년에 완성된 이 작품에는 모차 르트가 만하임과 파리등지에서 익힌 기법들이 녹아있다.

기쁨과 슬픔, 우아한 기품과 우수가 교차하는 이 작품은 섬세한 선율과 화성, 다이내믹 효과를 통해 극적인 효과가 더욱더 고조 된다. 작곡 당시에는 오스트리아의 비올라 파트보다 화려한 음색을 내기위해 독주 비올라를 반음 높여 조율하도록 지시되었다고 한다.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양식으로 작곡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자 비올라를 위한 작품 중에서도 제일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모차르트의 곡을 들을 때마다 홍난파의 봉선화가 연상되는 것을 통해 다음과 같은 추측을 할 수 있다.

홍난파가 1918년 4월 일본 동경음악학교(우에노 학교) 예과에서 음악을 공부할 때 모차르트 곡을 자주 접하면서 악보를 보고 깊은 감동을 느꼈다.

이듬해인 1919년 예과를 수료한 홍난파는 귀국하여 1920년 4월 창작소설인 처녀혼에 애수 곡을 만들어서 첨부 하였고 후일 김형준(김원복 교수 부친)이 집안 뜰에 피어있는 봉선화 꽃을 보고 봉선화 가사를 붙여 홍난파가 가곡선집에 수록해서 발표하였다.

가곡 봉선화를 통해서 서양음악 특히 예술가곡이 우리에게 전해오는 경로를 알게 된다. 우리나라가 서양문물을 도입하기 시작하던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홍난파 같은 음악가들은 우리나라보다 앞선 음악선진국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음악문화를 전한 것이다.

한편 예술가곡의 탄생은 우리에게는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예술가곡 이전에는 우리 조상들이 창가를 부르면서 정서를 달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대표적인 창가곡은 철도가, 학도가 등이 있다. 그러나 예술가곡이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림으로서 홍난 파가 작곡한 봉선화를 필두로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 현제명이 작곡한 고향생각, 김성태 작곡의 이별의 노래, 그리고 한양대 설립자인 김연준이 작곡한 청산에 살리라 등의 가곡이 널리 보급되었다.

일제강점기가 우리 민족에게 암흑 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가곡이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민족의 정서와 그 맥을 같이하였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와 홍난파의 봉선화를 통해서 우리나라 예술가곡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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