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도 성 시민기자

3.1운동 기념일을 우리의 눈앞에 두고 있는데 뭔가 아쉬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증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잔뜩 위축시키고 있으며, 지난해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워낙 크고 화려하게 했기에 101주년인 금년에는 행사가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보인다.

독자들은 3.1운동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가? 유관순, 손병희, 이필주, 한용운 등의 인물을 기억한다면 대단한 것이다.

비록 일부의 과오가 있더라도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흠모 하는 분이 있는가? 마음 깊은 곳에 ‘나도 저런 분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 있는가? 아니면 ‘내 당대에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자식은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존경하는 그분처럼 키우고 싶은 그런 분’이 있는가?

사람이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인물이 있는가하면 개인과 개인의 마음이 통해서 팬클럽을 만들고 나아가 유명한 이름을 넣어서 기념사업회를 결성해 업적을 널리 알리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소위 말해서 유명인물 기념사업회가 그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존경하는 인물이름에 ‘기념사업회’를 붙이면 금방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물에 대한 기념사업회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도 하지만 종종 난관에 빠지기도 한다. 그 이유와 실태를 알아보고 우리사회에서 유명인물 기념사업이 나아갈 방향도 제시 할 수 있다고 본다.

역사란 거울 앞에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보면 솔직히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면도 있지만, 감추고 싶은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기념사업을 할때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온정주의이다.

마치 거울 앞에서 자신의 장점만 보여주고 싶듯이 후손 들은 조상인 유명인사의 장점이나 좋은 점만 부각시키려 한다. 후손이 사실 왜곡을 넘어서 기념사업회를 자신의 의지대로 좌지우지 하려한다면 정상적인 기념사업회가 될 수없다.

유명인사 후손 앞에서 인물의 과오를 비판하는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다면 이는 무척 심각한 경우이다. 오로지 업적을 기려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또한 정상적인 기념사업 회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인물의 기념사업회나 연구 학술 단체가 유명인물의 업적이나 과오를 가지고 평가를 할 때 후손과 마찰을 일으키는 대부분은 이러한 경우이다.

기념사업회에 참여하려는 분들에게는 능력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덕성이다. 과거 크고 작은 비리에 연루되었거나 현재에 연루된 사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사람은 기념사업회에 절대 발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기념사업이야 운영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일정기간 미루면 되겠지만, 문제 있는 사람이나 윤리 없는 사람은 기념사 업회에 두고두고 디딤돌이 되기보다는 걸림돌이 되거나 기념사업회를 한 방에 좌초시킬 수도 있으므로 매우 위험하다.

사람에 대한 기념사업이 그래서 어렵다. 따라서 최근의 나타나는 경향은 인물에 대한 기념사업회를 인물이 졸업했 거나 수학했던 대학교가 운영하는 것이 전반적인 추세다.

예를 들자면 안익태 기념사업회는 그가 평양 숭실학교를 다녔다는 이유 때문에 서울 숭실대학교에 있으며, 시인 윤동주 기념사업회도 연세대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간혹 유명인사의 출생지에 대한 시비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마다 지역출신의 인물을 발굴하여 기념사업을 함으로서 지역주민에게는 자긍심을 가지게 되고 타 시도에서 오는 방문객에게는 지자체를 널리 알리는 홍보 효과를 기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기념사업을 하고 추앙하는 유명인물가운데 한두 가지 부족한 부분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조물주가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나보다.

유능한 인물이라도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가까운 이웃과 합력(合力)해서 선=완벽함을 이루라고, 타인과 합력할 줄아는 인물만이 참된 인물이요, 후대가 기념사업을 할 정도로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조물주는 생각했나보다. 그러 기에 유명한 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에 거는 기대가 제법 크다.

저작권자 © 안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