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희 삼안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나 시기가 있다면 언제일까?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기 전날 밤? 석굴암 수학여행길의 즐거움? 대학 합격? 혹은 신혼여행? 감격의 재벌회사 합격? 아니면 빵 씹어가면서 철야 근무하던 신입사원 시절이나 해외마케팅 본부장 시절의 외로움, 그외 여러 가지가 있어서 뭐라고 답할지 고민하게 되는 질문 이다.

좀 더 생각해보자. 배낭여행이나 성지 순례가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푸른 밤 첨성대를 본 순간의 경이로움을 함부로 잊지 못한다고 말하는 여고생도 있을 것이다. 출가 첫걸음의 울림을 뚜렷이 기억한다는 산사의 스님도 있을 것이며, 색스피어 주인공들을 무대 위에 올렸을 때의 감동을 결코 잊지 못한다는 노배우도 있을 것이고...

생각건대 정녕 이것들 모두는 잠자는 영혼을 깨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하는 순간들이어서 오래도록 우리 가슴에 사그라들지 않는 공명으로 남아있음이 분명하리라. 그래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말할 것이다.

비유가 좀 다르지만 (남자들에게 있어)군대 생활은 어떨까. 그것도 잊을 수 없는 시절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그렇게 누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용광로처럼 뜨거운 피 육신에 흐르게 한 채 생애 가장 혈기왕성하게 살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종교와 군대와 정치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 하는 군대 이야기를 지루함을 무릅쓰고 써보고자 한다. 며칠전 어느 사적인 자리에서 박상목 교수가 들려주었던 약간 ‘부풀린 군대 이야기’에 좌중이 떠나갈 듯 배를 움켜쥐고 웃었던 적이 있었다.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다.

한국 경제가 가파른 직선으로 고도성장을 그리던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 어느 해, 그해도 봄이 시작되자 어김없이 보리밭 고랑으로 소쩍새는 울었다.

산하에서 내뿜는 초록의 향기는 차가운 겨울이 떠난 흔적이었으며 너무나 차분하게 새로운 계절이 오고, 영국 사람 토마스 엘리엇이 현란한 언어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봄비가 잠든 뿌리를 깨우던 때 나는 영장을 받고군 입대를 한다.

입대는 나를 소년에서 어른으로 신분을 바꾸며 그 이전까지의 생활 패턴을 일거에 변화시킨 ‘잔인한’ 사건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은 나는 오늘 그때 군대를 가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를 부단히 궁리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군대 가서 재수 없으면 죽는다는 말도 있었고 장장 3년을 전방에서 푹 썩어야 한다는 게 너무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지만 사실이 그랬었다. 그래서 면사무소와 병무청을 찾아다니며 내가 평발일지도 모르니 신체검사를 다시 해달라, 간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신검을더 해 달라면서 입영 연기 또는 면제로 가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다녔다.

그게 되지않으면 방위병으로라도 빠지는 방법이 없는지도 궁리하는 등 별 수를 다 쓰고 다녔는데, 방위병이라 함은 요즘으로 치면 공익근무자를 말한다. 그러나 달리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그해의 4월은 역시 잔인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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