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한 석 경기테크노파크 전략사업본부장 고려인독립운동기념비건립 국민추진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

설날 빳빳한 세뱃돈 대신 책을 주면 아이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세뱃돈을 어떻게 쓸까 잔뜩 궁리한 아이들의 꿈이 산산 조각 나는 순간일 것이다. 이때의 현금은 책처럼 귀중한 지식이나 경험을 가져다 줄 가치를 훌쩍 뛰어넘는다. 역시 설날은 돈의 위력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때이다.

이처럼 맹위를 떨치는 돈이라는 인위적인 교환 수단이 우리의 삶을 어디까지 얼마만큼 잠식하고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회가 각박하다는 세간의 우려 속에 돈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하버드의 석학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설 연휴에 읽으면서 들은 생각이다. 그래서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은 책에서 설명한 바를 예를 들어 기술한다. 스위스는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약 39%에 이른다. 그래서 핵폐기장 건설이 늘 중요한 이슈가 된다.

천혜의 자연환경에다 관광수입으로 국가 경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영향을 덜 받을 수 있는 핵폐기장 후보지로 스위스 중부 인구 2천여 명의 작은 산악마을이 거론되었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스위스 의회가 요청할 경우 핵폐기 장을 받아들일지를 마을 주민에게 물었다. 결과는 근소하게 과반수가 찬성하였다. 마을 사람들의 시민적 의무감이 핵폐기장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누른 것이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이 재정적 인센티브로 매년 보상금을 지불하는 안을 제안했다고 가정했을 때 찬성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 결과는 찬성 지지율이 25%로 절반가량 떨어졌다.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이 핵폐기장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주민의 의지를 약화시킨 것이다.

보상금 액수를 더 인상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평균 월수입을 훨씬 넘는 일인당 8,700달러를 매년 보상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제안도 주민들의 결정을 바꿀 수 없었다.

이런 현상은 일반적인 경제이론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연구를 수행한 학자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핵폐기장 부담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시민들의 의지와 의무감에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제의는 주민들에게 찬성 표를 얻기 위한 뇌물로 느껴졌다.

공공정신이 우세한 곳에서 재정적 인센티브를 사용하는 일반 경제이론 방법론은 적용하기 어렵다. 시민의식이 뇌물에 매수당하지 않겠다는 금전 문제로 인식되면서 시민의 의무를 밀어냈기 때문 이다.’ 금전적 보상이 공공정신을 밀어내는 또 다른 사례를 들어 본다. 이스라엘 고등학생들은 매년 ‘기부의 날’에 집집 마다 돌면서 암 연구와 장애 아동 돕기 기부 캠페인을 한다.

이들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첫 번째 그룹에겐 기부활동의 명분과 동기부여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둘째, 셋째 그룹에겐 각각 모금액의 1%와 10%의 금전적 보상을 약속하였다.

그 결과 첫 번째 그룹의 모금액은 두 번째 그룹보다 50% 더 금액을 모금하였고 높은 보상금을 받는 세번째 그룹보다 9% 이상 모금하였다.

이 실험이 남긴 교훈은 금전적 인센티브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보상금을 벌고자 하는 의식이 개입하여 시민의 의무를 지키려는 규범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금전적 가치와 이해가 시민의 규범적, 도덕적 헌신을 훼손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아이를 찾으러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도입한 실험이다.

그랬더니 오히려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부모들은 벌금을 교사들에게 지급하는 비용으로 여겼다.

과거에 제시간에 도착해서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 잠식당한 것이다. 12주 후에 벌금제도를 없앴지만 상황은 변화가 없었다.

위와 같이 세 가지의 사례는 사회생활에 돈이 개입하면 도덕적, 시민적 규범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감퇴시키기도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반면 연구결과 사람들은 현금보다 학교, 도서관, 공원, 도로 같은 공공재 형식의 보상은 기꺼이 수용하는 편이다. 주민은 그들이 져야 하는 부담과 불편을 공공영역에서 보상받아야 마땅한 일로 여긴다. 이른바 공공정신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민의 의무와 희생에 따른 가치를 보상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우리 사회의 경제 상황은 체감 경기가 어렵고 살림살이가 여의치 못한 것이 현실이다.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개선되는 뚜렷한 징후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정부 재정 확대와 경제 정책이 서민들의 삶을 확실하게 개선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긴 힘들다.

그러나 위에서 보는 것처럼 일반적인 시장경제와 그 핵심인 돈의 위력이 항상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금전적 가치보다 드높은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명분을 담지한 문화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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