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교육학 박사, 특수교육 전공

새해가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한 살을 더 먹게 된다는 것이다. 30대까지는 나이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지만, 시속 40대는 40km, 50대 50km, 60대 60km로 점점 빨리 달린다고 한다.

그 만큼 체감하는 세월이 빠른 건지, 사는 것이 편안해져서 시간이 빨리 가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어쩌면 살아 온 시간은 잊어버리고 새로 살아 갈 날들의 시간은 똑같이 다시 계산되기 때문에 남은 날들이 적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최대한 100살 정도라는 생의 시간이 뚜렷한 한계를 두고 있으니 점점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유한한 ‘나이’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Kenny G–Titanic(My Heart Will Go On)이라는 연주곡을 배경으로 ‘타이타닉’이라는 멋진 배의 출항준비부터 ‘타이타닉’이 암초에 걸려 좌초되고 그 잔해가 바다에서 녹슬어가는 모습까지의 영상을 보면서 마치 인생을 축약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려하고 꿈이 넘치는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파티가 끝나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주인공으로서의 역할보다는 늘 조연이 되어 타인을 지원해야 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일상 속에서의 독립적인 삶을 운영해 가야 한다.

‘한계령’에서 노래하듯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수록 커지는 것이 바로 ‘나이’이다. 모든 측면에서 갖고 있던 것들을 두고 내려가는 것은 쉬운 일을 아니지만, 스스로 내려가지 않으면 뭔가에 이끌리어 수동적으로라도 내려가야 한다.

그러니 내려 갈 시점을 잘 인식하여 내려가는 것이 현명하다. ‘나이’에 걸 맞는 생각과 행동, 그리고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만큼 저절로 성숙해지기는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주위의 어른들께 가끔 듣는 이야기인데 노인회관에서의 단체생활 혹은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 등에서 노인 간의 불신과 불화가 매우 커서 적응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국가 지원이 마치 회장이나, 운영자, 혹은 오래 다니신 소위 ‘터줏대감’의 것인 양, 너무 텃새가 심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인간관계까지 감독하며 제재할 수도 없고, 참 어려운 난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OECD의 통계에서 보면,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201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80.3명으로 OECD국가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본, 스웨덴, 프랑스에 비해 약 3배 정도 높은 수치다.

노인들이 자살을 생각한 주된 이유로는 건강문제, 경제적 어려움, 부부·자녀·친구 갈등 및 단절 등이라고 한다. 삶에 대한 허무, 열심히 살았는데 남은 것은 별로 없고, 자식들은 본인에게 이익을 주지 않으면 무관심과 무시, 배신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죽음까지 이르게 되기도 한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이’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연스럽게 아주 정해진 시간표대로 살도록 계획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 땅에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 안에서 자라고, 학창시절이 되어 공부에 전념한 후, 대학에서 좀 더 학문에 전념하기도 하지만 그 이후 직업을 택해야 하고, 직장에 취업을 하면 치열한 경쟁 안에서 긴장된 시간을 살게 된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그리고 그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키고 출가시키느라 나를 돌아 볼 겨를도 없이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어느 덧 노년을 맞게 된다.

이러한 계획표에 따라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병’이나 ‘사고’로 죽음을 맞기도 한다. 그런데 큰 병 없이 흰머리가 휘날리도록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의 죽음으로 인해 자녀를 ‘고아’로 만들지 않았고, 부모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하지 않았으니 이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나이’는 아프고 슬픈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이다. 이런 위로의 마음으로 지난 날 삶의 여정을 기억하며 ‘나이’를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도 아름다운 ‘나이’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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