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율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아무튼 ‘무서운 아이들’ 또는 ‘철없는 아이들’로 불리던 율산은 절정에 오른지 1년 만에, 창업한지 5년 만에 그룹 부도로 막을 내리고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평가는 먼 후세의 몫이다. 여기서 잠깐, 독자 제현께서는 혹시 ‘밤빔’을 기억하시는가. 70 년대 후반 ‘맥그리거’나 ‘반도패션’ 등의 아성에 도전장을 냈던 율산의 기성복 브랜드다.

율산이 아직까지 살아있으면 ‘밤빔’은 신사 복에 부착되어 ‘캠’나 ‘갤’ 또는 ‘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백화점 매대에서 고객을 부르고 있을 것이다. 하나마나 한 허튼 소리다. ‘국제’의 성장 및 해체 과정도 기억해야 한다. 성은 양이요 이름은 정모라는 소년이 해방 전에 아버지의 정미소 안에다 고무신 공장을 차리고 작업을 벌였는데, 이 사소했던 소년의 사소했던 작업이 ‘국제’의 개업이다.

이 작업장이 1960년대 구강기를 지나 성장기로 오면서 고도성장 길을 이어가더니 70년대에 이르러 재벌기업 국제그룹으로 탄생됐다.

추억의 ‘왕자표 고무신’과 ‘프로스펙스’가 대표 브랜드로 불리던 국제가 해체된 지 30년이 지났다. 망한 이유에 대해 지금도 인터넷에 사연이 분분하다.

채권 은행인 제일은행은 부채비율이 900% 가 넘어 디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고, 양 회장이 대통령의 부름에 늦어 밉보여서 결국 정부와의 불화 때문에 해체됐다는 소문도 있었다.

당시는 엄청 힘 있는 정부 시절이었으므로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확인할 길도 물어볼 사람도 없다.

이후 회장은 해체는 부당하다고 소송을 내면 서 그룹 찾기 장기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허물 기는 쉬워도 다시 쌓기는 어려운 법, 흩어진 회사를 끌어 모으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헌재의 ‘강제 해체는 위헌’이라는 판단으로 다소의 명예를 회복했을 뿐이었다.

몇 년 후 다시 복원을 노렸으나 불어닥친 IMF는 양 회장의 재등판을 허락하지 않았고 2002년에 또다시 도전했으나 여신은 그를 외면하며 돌려세웠 다.

2007년이 오자 그는 명운을 걸고 일생일대의 마지막 그룹 찾기 싸움판을 벌인다. 그러나 이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번에는 세계금융위기 라는 놈이 그를 돌려세웠다.

그것도 매몰차게 돌려세워 노회한 기업인 양정모는 재기 불능이 되고 말았다.

양 회장 입장에서는 하소연할 곳이 참으로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오동잎 지면 가을이 가는 것을, 2019년 작금의 재계 목록 표에서 양정모 회장님 존함은 없고 22개 계열 사를 거느렸던 왕년의 6대 재벌 국제의 명성은 역사 속에서만 보인다.

율산과 국제가 화면에서 사라지고 시간이 흘러 IMF시절이 오자 지칠 줄 몰랐던 ‘대우’의 시계도 멈춘다.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가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 긴축 재정을 하지 않고 무리한 확장 정책을 펼쳤다, 결정적으로는 쌍용차 인수가 부실로 가는 길에 불을 붙였다는 등다양한 진단이 침몰의 이유로 거론됐다.

이 모든 것이 무리한 인수 합병에서 기인했 다고 했으며, 1인 체제라는 한계도 실패의 한원인으로 보태졌다.

김우중은 해외로 갈 수밖에 없었다. 허나 가끔씩 언론에 비쳐지는 모습은 도피한 사람치 고는 여유로워서 풍찬노숙하리라던 세간의 소문을 뒤집었다.

드디어 ‘다시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 배경은 그것이었고 호사가들도 전 대우 임직원을 통한 우회 재기를 점치기도 했다.

그랬는데 해외 낭인 생활을 접고 귀국하여 ‘그래도 아직 할 일이 많다’면서 자신의 패망에 대해 논쟁해보자고 재계를 긴장시킨 적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신원되어 다 못한 세계경영을 이어갈 것이라는 일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날씨 쌀쌀한 2019년 초겨울 하고 싶은 말도 많았을 이승에서의 삶을 접고 고운정 미운정 깊이 정든 지구와 결별했다.

율산의 놀라운 탄생과 소멸, 국제의 선풍적 성장과 해체 그리고 대우의 역동적 신장과 침몰, 또 어디 이뿐이겠는가.

이와 유사한 재벌들의 탄생과 졸업을 보면서, 그리고 지금도 명성을 날리고 있는 많은 재벌회사들을 보면서, 기업이란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어떤 미미함으로 시작하고 어떤 과정으로 성장하며 또 어떤 변수로 침몰하게 되는가를 생각해본다.

그중 침몰의 경우를 말해보라 한다면, 예를 들어 국제같은 기업의 해체 사유가 떠도는 소문과 맞다면, 대체 시류와의 융합과 비융합 그사이를 연결하는 방정식이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귀결되는 연구·생산·마케팅·물류 등 기존의 경영 문법 너머에서 음험하게 작동되어 존망까지 조타해버리는 가공할 비대칭적 변수는 혹시 아닐까. 심심파적으로 그런 것을 생각해 본다.

저작권자 © 안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