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석 경기테크노파크 전략사업본부장

역사는 규칙적으로 또는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가? 또는 순환하는가? 역사 속 많은 사례로부터 유사한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 주변 정세가 구한말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 당시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가 각축하고 대한제국은 국론이 분열된 채 열강에 휘둘렸던 때와 비슷하다고 말이다. 혹시 그때처럼 대한민국이 치명적 피해를 입을 수 있을까?

현재도 미·중은 무역분쟁으로 힘겨루기 중이고 한반도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피해가 걱정된다. 그러나 역사는 동일한 방식으로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헤겔을 비롯한 많은 역사철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어떤 패턴이나 리듬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역사의 아이러니인 반복적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미국은 한일 갈등으로 빚어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의 유지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은 고심 끝에 일본과의 경제 갈등으로 빚어진 지소미아 종결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조건부로 철회하였다.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비를 현재보다 5배를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줄타기나 실리외교를 한 것처럼 보인다.

돌이켜보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도 미국이 한일 협정을 촉구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입각한 반공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일본도 한국을 자신의 경제권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서 8억 달러를 배상했다. 그러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위안부, 강제징용, 원폭피해, 독도영유권 주장, 약탈문화재 반환 등 후속조치나 대책 없이 반성도 없는 협정에 그쳤다.

현재의 지소미아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방위전략에 따른 협정이다. 미국은 한일간 갈등이 무엇이든 미국 안보·군사전략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고 압력을 행사했다. 한미일 삼각 동맹체제의 균열이 생겨서는 안 되는 사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일본 보수 집권층은 한국의 지소미아 종결연기와 WTO 제소 철회를 양보 없이 퍼펙트로 이겼다고 자축하는 모양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대한민국은 해방 후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미군정은 포고령을 통해 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모든 독립 인사들을 개인 자격으로 입국시켰고 자주적 정부 구성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군정에 필요한 행정인력을 일본의 조선총독부에서 그대로 인수받았다.

미군정은 한반도 남쪽에 확실한 반공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였다. 온 국민이 바라는 일제 청산과 자주독립국 성립은 극동 전략상 관심 밖이었다.

남한과 대만을 일본과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에치슨 라인의 전초기지나 일차 방어선으로 삼는 극동 전략을 구사하는 게 최우선인 까닭이다. 그래서 제주 4.3이나 민족전선의 괴멸 등 많은 희생이 유발되었다.

현재도 여전히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 태평양 전략에 중요한 한미일 동맹의 균열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때문에 지소미아의 종결은 더욱이 막아야만 하는 사안이었을 것이다.

한편, 대한민국이 한미일 동맹에 치중할수록 북한과 중국·러시아의 반응이 자못 궁금하다. 북한은 남한을 자주적이지 못하다고 공세를 피면서 한편 미국과 유엔제재를 벗어나려고 한다.

이른바 강온전략을 구사 중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렇다 치고 중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얼마 전 사드 문제만 보더라도 경제, 문화 각 방면에 피해사례가 속출하였고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과거 구한말 시기와 달리 어떤 외교력을 발휘하여야 하는 것인가? 국내외 정세 속에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현재 가장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가장 먼저 대한민국은 공정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여야 한다.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7위안에 드는 군사 강국으로 확고한 위치를 점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천명한 것처럼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중 최강대국 사이에서 그들과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미동맹의 신뢰를 해치면 안된다. 미국과의 안보·군사동맹 전략에 슬기롭게 대응해야 한다. 미국과는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가 깨지면 남북이 힘을 합쳐도 평화가 쉽지 않다. 더 나아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활약하는 대한민국의 입지 구축이 어렵게 된다.

나머지 중국, 일본과는 역사적으로 따져 볼 일이다. 중국은 역대 큰형 집이었다. 그들에겐 큰형으로 대우해 주고 실리를 모색하는 방법이 유력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도와주고 있지만 대한민국과도 정치 경제적으로 적대적이지 않다.

중국은 자본주의를 도입한 지 오래이며 정치적 자본주의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이 문제이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나라는 일본이다. 그들과는 정치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와 자존심이 걸려있다.

그들이 우리를 흔들 수 없도록 소재·부품·장비의 원천기술 확보하고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거나 문제로 대두되는 일본의 팽창정책은 항상 한반도와 대립각을 세웠던 사안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안에 친일 잔재와 수구적 요소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에서 克日은 일제 잔재의 청산이며, 정치경제 힘겨루기에서 이기는 것이며, 문화와 정서적으로 日色을 탈피하는 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가 불투명하고 꼬이게 되는 건 분명하다. 그 과정의 중요한 교훈은 친일 역사를 반성하고 일본의 영향력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비극의 역사를 종식시키는 일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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