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영 인더불어민주당 단원갑 지역위원장 (사)모두의집 이사장

지난 16일에 필자는 더불어민주당 안산단원갑 지역위원장으로서 당원들과 함께 충남 예산에 있는 윤봉길 기념관을 방문하였다. 당원들의 단합과 결의를 다지기위한 워크숍의 방향을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독립운동의 상징인 윤봉길의사의 정신을 기리는 것으로 결정하고 추진된 행사였다.

당원들은 버스 12대에 나누어 타고 예당저수지 출렁다리 관광과 함께 윤봉길 기념관과 생가, 사당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우재 전 국회의원이자 월진회장의 특강, 양승조 충남도지사의 격려도 있었다. 윤봉길이 태어나고 자란 예산은 필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윤봉길의사는 안중근의사와 함께 우리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되어있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그러나 막상 윤의사의 기본정신이나 고향, 활동사 항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지 않다.

‘윤봉길의사를 기린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선은 그 분의 삶의 궤적에 깊이 빠져 들어가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에서 나라면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삶을 살았을 지를 그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 다. 그것은 평범치 않은 윤봉길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반추해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는 계기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봉길 정신을 살린다는 것은 현대를 살아 가는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던지는 건가’를 고민해 보는 게 중요할 것이다.

윤봉길 의사는 25살의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물통 폭탄으로 일본의 핵심 장성들과 주요인물들을 응징했다. 대부분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전 세계가 놀랐다. 이는 만방에 대한민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고, 일본의 중국까지 이르는 동북아 침략욕에 제동을 거는 일대 사건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시들해져가던 독립운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도 되었다. 이번 기회에 윤봉길 전기도 다시 읽고 기념관을 둘러보며 새삼 느낀 것이 많다.

윤봉길의사는 2018년 11살의 나이에 덕산보통 학교에 입학했다.

다음해 3.1운동이 일어나는 것에 고무되어 일본 식민지 노예교육을 거부하겠다며 자퇴했다. 어린 나이에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었던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12살이니까 지금 초등 5학년의 나이였다.

또한 일본군의 중요 인물들을 암살한 사건은 어찌보면 테러리스트로서 모험주의자로 비춰질 소지도 있었다. 윤의사는 당시 제대로 된 군사조직으로 무장독립운동이 이루어지길 원했다. 그러나 탄압으로 인해 무장독립운동이 어렵다는 현실적 인식하에 상징적 사건의 필요성을 느껴서 거사를 결단했다. 무모하게 벌인 일은 아니다.

윤 의사는 1930년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길에 오르며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비장한 결의를 엿볼수 있다.

독자들은 ‘강의한 사랑’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 가? 윤봉길 의사는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굳세고 강직한 나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그의 의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윤봉길의 삶은 우리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당시에 꿈꿨던 독립이라 함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개척하고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기위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국가’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가지는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가. 일상에 서의 성실한 삶, 생산적 노동과 사업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결국은 진정한 의미의 현대판 독립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개척하는데 필요한 자유를 구가하며 국민행복을 가져올 수있는 삶’이어야할 것이다. 그것은 국제정세 속에서 ‘통일로 가는 평화로운 국가’ ‘정의롭고 공정한 민주주의 국가’ ‘불평등의 격차를 완화하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복지국가’를 꿈꾸고 실행하는 것이라고 마음에 담아 본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과제를 다시 새겨보게 한 윤봉길 의사와의 대화는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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