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교육학 박사, 특수교육 전공

인간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 필자는 33세에 암이 걸렸다. 동네병원에서 정기검진을 하다가 우연히 암이 발견 되었고, 조직검사 후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S대 병원에 입원을 하려고 했으나 병석이 없어서 약 2주일을 집에서 기다려야 했다.

내가 이 젊은 나이에 죽을 수도 있다니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고, 왜 하필 나에게 이 무서운 병이 왔을까? 내가 살아 온 행적들을 더듬어 보면서 병에 걸린 원인들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잘못 살아 온 시간들을 반성도 해 보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앞에 ‘죽음’이 와 있다는 사실과 어린 두 딸(9세, 7세)을 두고 ‘죽을 수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저 기도 밖에는 아무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입원에 필요한 짐을 싸고, 내가 없어도 쉽게 찾아 입을 수 있도록 아이들을 위한 옷가지 등을 정리하고 그리고 남편에게 아이들에 대한 당부를 하는 정도였다.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입원을 하고 온갖 검사 들을 실시하며 ‘죽음’을 목전에 두고, 물론 ‘가족’에 대한 걱정이 크지만 어쩌면 가장 큰 당면과제는 나 자신의 ‘영혼’의 문제였다.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갈까?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내가 33년 동안 어떻게 살았지? 내가 지은 죄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겠지? 하는 죽음 이후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생각으로 뒤척이다가 수술이 시행되었고, 다행히 암은 발생지점에서 아직 전이되지 않은 초기단계였다.

약 두 달의 입원 후 퇴원을 할 수 있었고 전혀 가능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운전도 하고, 다시 복직을 하여 직장도 다니고 건강한 사람으로 ‘죽음’을 잊고 살아온 지도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필자의 경우는 다행히 ‘암’에서 살아난 경우이지만, 연령에 관계없이 수많은 발병과 함께 갑자기 3기, 4기의 선고를 받고 2∼3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많고, 아침에 인사 잘하고 나가서 교통사고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오기도 하고, 이외에도 사건·사고로 인한 급작스런 죽음의 소식을 우리는 매일매일 접하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까웠던 사람들의 장례식장에 가서 영정사진을 보며 그 안타까움을 표현할 길이 없다. “그렇게 열심히 살더니∼”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좋은 사람인데∼” 한 사람의 인생이 죽음으로 정리되는 시간이다. 죽은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산 사람도 죽은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동안 내가 너무 미안해”라는 말 조차도 의미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죽음’을 구지 삶의 과정 속에 포함시키고 싶어 하지도 않고, 나의 일이라 여기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탄생’과 함께 ‘죽음’을 가져왔고, ‘죽음’이 있기에 유한한 ‘삶’의 소중함을 안다. 인간은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 혹은 “산다는 것은 무덤을 향하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생은 단 한순간도 ‘되감기’가 없이 앞으로만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 겸손해지고, ‘생명’ 앞에 겸허해진다.

그리스의 시인인 소포클레스(Sophokles)는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을 돌려라. 그리고 미구에 죽을 것이라 생각하라.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가를 그대가 아무리 번민할 때라도 밤이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번민은 곧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했고, 몽테뉴(Montaigne, M.)는 그의 『수상록(隨想錄)』에서 “어디에서 죽음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곳곳에서 기다리지 않겠는가! 죽음을 예측하는 것은 자유를 예측하는 일이다. 죽음을 배운 자는 굴종을 잊고, 죽음의 깨달음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우리들을 해방시킨다.”고 했다.

사람은 죽지 않으면 안 되고 혼자서 죽는다. 누구도 피하지 못하고 거부하지 못하며 전신으로 맞아들여야 한다. 지금 또다시 나에게 죽음의 위기가 온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일상의 삶에서 선물 받은 오늘을 자신 있게, 당당하게, 떳떳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면서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고, 영혼을 위한 기도와 함께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면 후회와 회한은 덜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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