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어쨌든 땅 팔아먹은 사건도 시간이 흘러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 모친도 요즘에는 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극성스러울 정도로 총기가 좋은 어머니다.

어느 한가한 설 명절이 되면 땅이 다른 것과 뒤섞여 갑자기 밥상 위에 올라올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 용의주도하게 답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땅 팔아먹고 속이 편하냐. 소원대로 됐냐. 아니요. 그럼 뭇 때문에 몰래 팔아먹었냐. 그런디 당시 땅을 산 ‘서울 놈’도 산 것을 쓸모가 없어서 후회하고 있다고 하더이다. 잘 판 것이지요. 시끄러. 이제 그만 고정하시지요(대비 마마) 등이다.

그러나 웃어서는 안된다. 모친의 입에서 예상 밖의 여죄가 튀어나와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 있으므로.

토지 사건으로 모친께 죄를 진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 큰 아들한테 너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치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낙도 오지에 땅을 방치해 놓는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거기에 쌀농사 보리농사 지어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정리할 것은 정리해서 도시 인근에 땅 마지기라도 사두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경주 최씨 양반집 딸 경력을 자랑하며 사는 모친은 당신이 남달리 고결한 정신세계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투자 효율성 같은 서울에서나 써먹는 ‘낯설고 세속적이고 천박한’ 계산법엔 관심이 없다.

모친에게 있어서 땅은 화폐 몇 다발로 교환하는 셈법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은 이미 설명했다. 많지는 않지만 토지는 어머니에게 시동생 시누이 공부 시켜 시집 장가보내고, 자식들 키워 객지로 보낸 부의 원천이다. 허니 땅은 당신 분신이었을 것이다.

대갓집 며느리로서 그런 올곧은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비땅(부지깽이) 하나 훼손하지 않고 조상 유재를 지켜 왔을 것이다. 세상을 거꾸로 살았는지 철이 없어서인지 땅이라는 것을 수익 모델로 설정해놓고 어떻게 하면 이놈을 팔아 돈을 만져 볼까로 밤낮없이 머리를 짜내고 있는 당신 맏아들의 ‘세속적이고 천박한’ 뇌구조와는 다른 사고를 가진 분이다.

어머니는 평생을 그런 자세로 땅을 지켜왔으며 앞으로도 땅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잘 안다. 비록 두 번째 땅 팔아먹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래도 나는 바라고 있다. 자식들의 요구와 협박에도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지혜와 정신력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며칠 있다가 안산병원에서 뇌기능 개선제 「알포아티린」을 처방받아 모친을 보러 갈 계획이다. 어머니는 이 약을 ‘거시기 까서먹는 그 노런 놈’으로 부른다. 갈 때는 어머니가 이른대로 천천히 갈 것이다. 빨간 불에는 설 것이다. 무안 해제 지나 솔섬(松島)포구에 당도하면 원산지 민어 한 마리와 몰 오른 세발 낙지 열 마리 정도 사야 한다.

지도면(智島面) 저자길 안쪽 식육점에 들러서는 함평 도축장에서 갓 잡은 흑돼지 둬 근을 끊고 마을회관에 돌릴 잎새주 한 쾌상 실으면 섬 들어갈 준비는 끝, 고구마 막걸리는 부뚜막에서 진하게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깡다리 젓갈과 밥풀 갈아 버무린 나박김치를 맛있게 담가 놓았을 것이다.

더운밥으로 맛있게 낮밥을 먹은 후 모친과 동무 삼아 도란도란 부친 산소를 가야 한다. 산소에 가려면 필히 ‘서울 놈한테 팔아먹은 땅’ 옆을 지나가야 한다. 보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어쩌겠는가. 과욕을 억누르고 묵묵히 앞길만 보고 걸어갈 생각이다.

실패한 ‘땅 팔아먹기 시준-2’는 쉽게 오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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