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주일만에 땅 매각 사건 계속 이어간다. 명심보감에 지족상족이라는 말도 있지만 논어에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아니함보다 못하다는 말인데 모든 일은 적당히 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그런 명언에 무지했던 나는 욕심이 그칠 줄 몰랐고 결국 모친에게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하나 팔아먹었으면 그 정도에서 끝내야 했는데 과욕을 부린 나는 ‘땅 작업’을 위해 매주 시골에 내려갔다. 그랬는데 아들 녀석이 전에 없이 비싼 영광굴비 사들고 자주 내려오는 것과 또 산소에 벌초한답시고 가서는 오랫동안 머무르다 오는 동태를 수상히 여긴 모친이 수소문 끝에 사건의 전모를 알아내고 만 것이다.

어머니를 헷갈리게 하기 위해서 친구들과 단체로 내려가기도 했고 효도 관광버스에 섞여 가서 너스레를 떨었지만 총이 좋은 모친이 눈치를 채고 만 것이다.

내가 땅을 은밀하게 팔아먹은 것을 안 모친은 노발대발 소리 내어 외쳤다. ‘야 이놈아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땅을 몰개(몰래) 팔아먹냐, 이게 웬 날벼락이냐, 이 어미를 고렇게 속여먹을 수 있느냐’며 이미 남의 땅이 된 논바닥에 서서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고, 그 광경을 보니 나 또한 마음이 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시추에이션이었으므로 아무리 선수라고 한들 연속적으로 두 번에 걸쳐 땅을 팔 수가 있었겠는가. 난 결국 작전상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때 또 땅을 팔았더라면 모친은 혼절하여 몸져누웠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려웠던 시기였다. 이리저리 사적인 비용 지출이 만만찮았다. 필요한 것은 역시 자금이었다. 그래서 땅을 처분했는데 사실 내가 팔아먹은 것은 땅만이 아니었다.

전 회사에서 근속상이나 모범상으로 받았던 금반지나 금메달 같은 것도 한 개만 남기고 다 팔아 처분해버렸다. 직장에서 받은 금반지는 내 젊은 청춘이 땀과 버무려 만든 훈장 같은 것 아니었겠는가. 그런 날 저녁에 포장마차 탁자 앞에 놓인 소주잔의 절반은 분명 눈물이었다.

나는 일터에 들어간 사람들이 거쳐 가는 길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패턴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때가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다 빠른 경우 대리나 과장 때, 좀 늦은 사람은 부장이나 이사 때 회사를 그만 둔다.

그 즈음 ‘바람’이 들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자는 유혹이나 떼돈을 번다는 솔깃한 투자 유혹이 그런 ‘바람’이다.

갑자기 이민을 가는 사람도 보았고 뜬금없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인생 공부를 하고 싶다’며 직장을 그만 두는 재벌회사 출신 과장도 보았는데 그것도 일종의 ‘바람’이다.

남이 범접할 수 없는 용기를 수반한 바람인 점이 보통 바람과 다를 뿐이다. 업종 전환을 하거나 다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는 사람도 있고 신앙 때문에 회사 생활을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물론 상사의 괴롭힘 또는 질병으로 그만 두는 경우도 있고, ‘진급이 안되는 절망감’ 때문에 일터를 그만 두는 청춘도 있으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능력의 한계를 느껴가지고 써 던지고 나오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서 사업을 하거나 다른 삶을 살아간다.

상대적으로 공직에 계신 분들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일반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은 이렇듯 여러 형태로 직장을 사직하고 이유 또한 다양하다. 나는 그런 것을 많이 목격했다.

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사직할 때 받은 퇴직금은 평균 1년 안에 7할 이상은 다 날린다는 것이다.

일종의 ‘법칙’같이 작동하는 이 퇴직금 탕진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정신 차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퇴직금 쫄딱’이라는 말은 이래서 나온 말이다.

이제 그 앞에는 다른 파도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내가 본 보통의 직업인이 걷는 여정이었다. 나는 바로 그런 시기에 앞장에서 언급한대로 친구와 합작하여 토지 매각 사건을 일으켜 첫 번째는 성공을 했고 두 번째 시즌-2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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