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근 민생정책연구소 이사장/전 안산시의회 의장

Don’t be a royal, be a loyal(왕족이 되지 말고, 충신이 되라).

언젠가 큰 아들이 필자의 생일을 축하드린다며 주었던 편지에 적혀있던 문구다.

정치인인 아버지가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바른길을 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표현이었다. 편지의 다른 내용은 기억에서 흐릿해졌지만, 이 한 문장만큼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royal(왕족)과 loyal(충신)은 외형적으로 단지 한 글자만 다를 뿐이지만, 그 의미는 하늘과 땅의 간격만큼이나 큰 차이가 난다.

‘royal(왕족)’은 자신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인 반면, ‘loyal(충신)’은 주인을 위해 주어진 힘을 활용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royal(왕족)’은 오직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며 모든 행위가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향하고 있으나, ‘loyal(충신)’은 오직 주인의 뜻에 따라 행동하며, 그 행위는 주인의 이익과 영광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royal(왕족)’이 될 것이냐, ‘loyal(충신)’이 될 것이냐는 현실 정치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라면 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

정치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내가 royal(왕족)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하거나, ‘나는 royal(왕족)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나는 국민들의 충실한 loyal(충신)이다’라고 생각하며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loyal(충신)에 가깝다고 생각할까? royal(왕족)에 가깝다고 생각할까?

우리 정치에 대해 보여주는 커다란 불신과 정치개혁에 대한 높은 열망은 시민들이 정치인들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 다양한 이견(異見)들이 존재하는 현대사회에서 국민들의 의견(意見)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는 이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마저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정치권에 기대를 갖는 대신 직접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주 내내 논란이 된 조국 수호 서초동 집회와 조국 퇴진 광화문 집회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국민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국민들을 자신들에 대한 지지 세력과 반대세력으로 구분 짓고, 지지 세력에 대하여는 과장·확대해석하며, 반대세력에 대하여는 폄하·비방함으로써 갈등을 확대시키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다.

주인인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들(혹은 정파)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loyal(충신)보다는 royal(왕족)에 가까운 존재로 국민들에게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 정치권은 정신 차려야 한다. 주인인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정치적 판단과 행위에 있어 자신의 뜻을 국민의 뜻보다 우선하고 있지는 않은 지, 혹은 지지 세력의 의견을 과잉청취하고 반대세력의 의견들은 무시하거나 폄하하고 있지는 않는 지에 대해 끊임없이 점검하고 성찰해야 한다.

자기 뜻과 이익이 최우선인 royal(왕족)과 달리, loyal(충신)에게는 주인인 국민의 뜻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적인 가치이며, 이 과정에서 무시해도 괜찮은 국민의 목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능한 모든 목소리를 경청하고, 치열하게 고민함으로써 국민들을 영광스럽게 만들고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Don’t be a royal, be a loyal.

국민에 대하여 왕족이 되려하지 말고, 국민을 향한 충신이 되도록 노력하자.

저작권자 © 안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