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살며 생각하며>

버리기 아깝다며 헌 양말 꼬매신고 일본식 몸빼바지와 해가리게 모자 차림으로 뜨거운 비닐하우스에서 자식들에게 보낼 고추 따며 어머니는 시골에서 외롭게 사신다.

자식들 체면도 있으니 때깔 나게 입으시라고 옷가지를 사보내도 딱 한 번 입은 뒤 벽에다 걸어놓고 쳐다만 본다. 햇볕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 해마다 늘어나는 주름살, 거북 등같이 갈라진 손등과 다 닳아 없어진 열 손톱, 텔레비전 인간시대에 나오는 얼굴이 우리 어머니 얼굴이다.

나도 아들을 낳아 내 키보다 더 크게 길러보고 이것저것 생각하니 종합적으로 후회가 엄습한다. 자식 길러보면 안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깨닫는다.

오늘 같은 주말 하오 남쪽 하늘을 길게 쳐다보고 있으면 그곳에 영락없이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고, 텃밭에 피어 있는 하얀 꽃 흑임자나무도 보이고 어머니가 들고나며 쳐다 볼 길막 끄트머리 키가 어른 허리에 차는 빨간 우체통도 보인다.

어머니는 특별히 편지가 오는 것이 아닌데도 날마다 영창문 문턱에 팔 괴고 우체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햇살 따가운 오후 새소리 바람소리에 떨그렁 하고 풍경소리 들리면 그제서야 그것이 자식들 목소리인줄 알 것이다.

어머니는 올해로 아흔 고개를 넘었지만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이다. 재작년에 병원에서 백내장 시술 한번 했지만 무릎관절을 제외하고는 최근까지 뇌나 당료, 혈압, 체지방 등에 큰 이상은 없어 보인다.

비슷한 연령의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거나 요양원 침상에 누워 있는데 일요일 오전이면 어김없이 성경책 끼고 시심사심 걸어 교회 나가고 틈이 나는대로 이집 저집 마실 다닌다.

열무김치 한 양푼 담가다가 마을 공회당에 돌리며 오지랖을 과시하기도 하고 그리고 “테레비 보면 날마다 잡혀가고 도둑놈들밖에 없더라. 맨 도둑이여” 하면서도 여섯시내고향이나 송해의 전국노래자랑 시간만 되면 화면 앞에 앉는다.

그래서 일요일 12시 반에 전화를 하면 어머니는 틀림없이 전화를 받는다. 그럴 때 어머니는 꼭 “오냐 교회 가냐, 차 조심해라. 빨간 불에는 서야 한다”하고 말하고 나는 꼭 “예, 알았어요”라고 대답한다.

대답은 그리 하지만 교회가 2분 거리에 있어도 두어 달에 한번 꼴로 나가는 완전 나이롱 신자이며 신호등도 가끔 어긴다. 어머니 속여 먹기는 일도 아니다. 나는 언제 철들 수 있을까.

이런 건강한 모친이어서 자식들에게 복임에 분명하다. 부모도 자식에게 효도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러면 나는 어땠는가.

어머니가 주신 사랑의 몇 할이나 보답해드렸는가. 내리 사랑의 십분의 일도 못한 것 같다. 학교 졸업하고 나와 재벌 회사에 들어갔다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한양 땅 한복판 롯데월드 가서 맛있는 스테이크 한 점 썰어드린 적 없고 미국, 중국, 대판(大阪) 한번 보내드린 적은 더더욱 없다.

마을 사람들에게 눈치만 안보이게 겨우 흉내만 낸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지금도 안산에서 이곳저곳 폼만 잴 줄 알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자주 내려가지도 못한다. 대체 뭘 했나 싶다.

어쩌다가 시간이 나 시골에 가서 같이 놀아드리고 농사일을 도우려 했다가도 휭 하니 가서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옛 동무 만나 얼큰히 취했다가 다시 바람처럼 휭 하고 올라오고 만다.

저작권자 © 안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