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지난 주에 하계 휴가를 겸해 아주 오래전에 탯줄을 과감히 잘라 묻었던 전라남도 신안을 다녀왔다.

반년에 한번 꼴로 가는 곳이지만, 갈 때마다 살짝 설레는 곳이다. 어머니가 홀로 계시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수산시장에서 1~2키로 짜리 살찐 민어 한 마리를 담고 어머니와 함께 바닷가도 돌고 빨래비누 사러 읍내 점방에도 가고, 혈압약 타러 면사무소 앞 보건소에도 들렀다.

조금은 누추하고 조금은 정겨운 방앗간 옆 우동집에 들러 콩국수 하나와 냉면 하나를 시키고 그것을 안주 삼아 탁주 한 양재기 따라드렸다.

시골에 있는 이런 유형의 점방은 대게 밥집이라고는 하지만 잡화점 같기도 해서 국수도 팔고 미원도 있고 모기향도 판다.

주변 모두가 정겹고 초라한 것들이지만, 이 섬에 곧 다리가 개통돼 도시 사람들이 밀려오면 모두들 사라질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직도 더위기 식지 않은 모퉁이에 돗자리를 편 다음, 자식들 먹인다고 당신께서 된장 속에 푹 파묻어 둔 돼지고기를 꺼내 구우며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나누었는데, 한번 시작하면 안 쉬고 계속하는 어머니다.

내가 눈을 똥그리 뜨고 그러냐고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자, 어머니는 신이 났다. 숯불에 고기가 타는 줄도 몰랐다.

‘누구네 외손자가 서울서 뭐가 됐다더라, 선창가 요양원에 있던 정 집사가 얼마 전에 죽었다더라, 금년 대파 농사는 비가 많이 왔는데도 끄트머리가 하얗게 변해가고 있다,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안와서 올해는 망했다, 이참에 새로 뽑힌 변 아무개 조합장은 잘 한다더라 어쨌다더라’ 또 전국노래자랑 송해 이야기도 하고, 심지어는 요즘 텔레비전을 보니 일본사람들이 어쨌다더라 등등까지***.

그런 어머니의 자잘한 주변 이야기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사실 그 이야기는 대부분 서너 번은 이미 들었던 것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꿈쩍 않고 상추 쌈과 함께 추임새를 넣어드렸다. 1만분의 1도 미치지 못하는 초나라 노래자(老萊子)의 흉내이기 때문이다.

신안 현지에 있거나 가끔씩 아들 사는 곳으로 다니러 오는 모친은 자식들에게 양지쪽 지시락이다. 지금부터 한국의 모든 ‘어머니 상’과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 최수진 여사에 대해 시간 나는대로 다소의 윤색을 거쳐 써보고자 한다.

심심파적으로 시작한 사적인 이야기가 지루하다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어머니는 신안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중농이라는 말을 종종 듣고 살던 경주 최씨 집 둘째 딸이다.

스무 살 삼단 같은 머릿결에 동백기름 바르고 가마 타고 시집와서 김해 김씨 집 둘째 며느리가 된 이후, 마흔 한 살에 지아비를 여의고, 마흔 넷에 시어르신이 돌아가신 후 45년 넘는 세월을 신산하게 살아온 ‘여자의 일생’의 전형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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