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교육학 박사, 특수교육 전공

바람이 분다. 바람이 옷깃을 스쳐 지나간다. 다시 바람이 불어 얼굴과 뺨, 온몸에 휘 감긴다.

겨울에는 세찬 바람이 불더니 봄이 되어 시원하면서도 포근한 바람이 분다. 조금 더 지나면 더위를 식혀주는 고마운 여름 바람이 불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언제 불지. 언제 떠날지, 예고도 없이 그저 왔다가 사라진다. 이런 점에서 바람은 가끔 인생에 비유된다.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 매섭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고, 천천히 종일 머물면서 시원하기도 하고....

숨을 쉬고 있는 하루는 매서운 바람처럼 길고, 크고 작은 일은 어찌 그리 많은가? 예전에는 알 수도 없었던 넘쳐나는 국내·외의 사건·사고, 정치·경제 소식 등을 접하게 되니, 작은 몸 하나로 소화하기도 버겁다.

경제사정이 풍족하지 않았던 예전에 비하면 월급도 많아지고, 생활도 편리해지고, 훨씬 풍요로운 일과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여유는 더 없어져서 심지어 직계존속, 직계비속, 부부까지 살인을 하는 추악한 인간의 모습이 노출되고 있으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조금 더 갖고 싶어서, 조금만 더 남들보다 비교우위에 서고 싶어서 ‘시기’와 ‘질투’로 가득차고, ‘욕심’과 ‘경쟁의식’이 만연하여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상처를 주고 미워하고 고통을 주는 일은 비일비재 하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졌거나, 늘 나의 편이 되어 주리라 기대했던 가족에게 큰 상처를 입었거나, 열정을 다하여 직장생활을 했는데 그 직장이 없었진 경우 등으로 인해 내 의지가 꺾여 몰아치는 바람 앞에 휘청거리며 쓰러질 것 같은 ‘고난’이 다가 왔다면, 이 ‘고난’의 바람이 비껴갈 수 있도록 포기하고 내려놓고 다른 통로를 찾아가야 한다. 카네기는 ‘큰 나무는 바람을 많이 받는다’고 하였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큰 나무의 가지를 자르는 아픔이 있더라도 이 ‘고난’은 시간 속에서 바람처럼 어디론가 사라질 것이다. 지금은 길고 긴 시간 속에서 투쟁하듯이 살아야 하겠지만,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일까? 악한 것일까?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인간이 선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스스로 완전해진다는 철학적 신념을 바탕으로 외부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늘이 부여해 준 고귀한 근본인 ‘대체’(大體)를 넓히고 순화시킬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며, 반면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은 인간의 본성을 ‘자기욕구’의 충족에 있다고 보고 강제가 없으면 인간의 생존조건인 사회적 안정이 침해되나, 인간은 ‘지’(知)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생존과 안정을 위해 이기적인 자기본성을 제어한다고 보았다.

의암 손병희선생은 ‘사람에게는 두 마음이 있다. 하나는 사랑하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미워하는 마음이다. 대상이 자기 마음에 들면 사랑하게 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워하게 되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이 두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며 ‘몸’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한계가 없는 ‘성품’으로 바꾸라고 하였다.

인간은 선(善)과 악(惡), 두 마음에서 갈등하면서도 ‘자유’와 ‘능력’, ‘지’(知)를 통해서 이기적인 자기본성을 제어하고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희망’일 것이다. 인생은 짧고, ‘어떻게 살았느냐’의 평가는 길다. 비록 고난은 피할 수 없더라도 스쳐가는 바람 같은 인생에서 좋은 ‘성품’으로 시원한 바람이 되어 사람들이 찾아드는 큰 그늘을 만들면서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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