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생각하기 1

[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오래된 기사를 검색하는데 문득 2017년 9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세대학교 마광수 교수에게서 눈길이 멈춰진다. 마 교수는 자신이 쓴 소설 때문에 재판까지 받고 대학에서 면직과 복직을 반복한 요란스러운 교수직을 은퇴하고 2016년부터 혼자 살던 사람이다. 그러다가 울화병과 우울증을 앓으며 남과 어울리지 못했고 할 말도 많았을 텐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숙소에서 서둘러 생을 마감했다.

그는 ‘위선과 가식적인 한국의 성 문화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성에 관한 대화를 자유롭게 했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평론가나 대중으로부터는 ‘음란’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임당해 무차별적 왕따를 수용해야 했던 문학계의 자유인이자 이단아였다. 일부 사람들은 그런 행보를 ‘미완의 천재성’에서 찾으려 노력하지만 망자 간지 2년이 되어 관대함이 있을법한데도 아직까지 동조하는 분위기는 없는 듯하다. 나 개인적으로도 마 교수가 좀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성에 관한 대화가 ‘자유로울’ 훗날에 우리가 평가할 일이다.

신문에 나지 않은 뒷이야기가 있어서 몇 줄 적는다. 그가 죽기 한 시간 전에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친구야 나 지금 너무 힘든데 와줄 수 없니가 그 말. 그러나 친구가 도착하기 한 시간 전 목숨을 끊고 만다.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그가 찾은 사람이 ‘친구’였다는 사실이 쓸쓸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분명컨대 마 교수는 친구에게 속마음을 열고 자신의 힘듬과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힘없는 목소리로 이야기 했었을 것이다.

불현 생각나는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 ‘관중(管中)이 말하기를 나는 어려서 친구 포숙아(鮑叔牙)와 함께 장사를 했다. 내가 이익을 많이 취했는데도 포숙아는 나를 욕심쟁이라 말하지 않았다. 내가 궁핍하게 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임금에게 세 번씩이나 쫓겨났다. 그래도 포숙아는 나를 못났다 말하지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나는 세 번 싸워서 세 번 도망친 일이 있다. 그러나 포숙아는 나를 비겁하다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늙은 모친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아다᠁.’

우리 주변에 이런 친구가 있을까. 한가한 휴일 오후 작은 동산에 앉아 솔잎 향기 맡으며 시간에 쫓기지 아니하고 대화를 나눌 친구, 저수지 둑에 앉아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쳐다볼 때나 기차 여행을 떠날 때, 시민시장에 가서 가락국수 한 사발 놓을 때 옆에서 모자람을 채워줄 친구가 멀지 않는 곳에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것은 견줄 수 없는 낙일 것이다. 마 교수는 날마다 가슴 따뜻하고 향기 나는 이런 사람을 기다리다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것은 아닐까.

이야기를 살짝 돌려, 꽃은 향기가 있다. 그러나 꽃에게만 향기가 있을까. 아니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 사람에게도 꼭 그만한 기품이 있어서 사귈수록 든든하고 내면 깊은 곳에서 샘물같이 솟아나는 그 무엇이 있는데 사람의 향기다. 향기 나는 사람을 친구로 두고 있는가. 가슴에 울림을 주고, 비록 내가 그에게 잘못한 것이 많다 할지라도 내색 하지 않고 배려해주는 속 깊은 친구나 지인이 있는가.

우린 아이 시절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많고 많은 사람과 만났다 헤어지고 또 만나고 산다. 그러나 오래 동안 맘속에 두고 있어서 행복해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로지 ‘대립했던’ 사람들뿐이다. 내가 ‘진정’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른하고 따뜻한 봄날 오후다. 오랜만에 맘속에 두고 행복해지는 친구를 찾아 잠시 생각에 잠겨보는 것은 어떨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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