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승 준 한도병원 소화기내과 과장

유난히 추웠던 12월의 어느 토요일, 한 중년 남자 환자가 내원했습니다. 평소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던 분이었는데, 최근 몇 달 사이에 몸무게가 줄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검사 결과는 안타깝게도 진행성 위암이었고, 이미 폐와 간으로 전이가 된 상태여서 수술도 불가한 상태였습니다.

아직 한참 자녀들을 가르치고 결혼도 시켜야 하는 50대 가장에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기에 환자분에게 항암방사선 치료를 권유했고,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두 달 만에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다시 우리 병원을 찾아오셨습니다.

두 번 정도 항암치료를 받다가 너무 힘들어서 언론에서 알게 된 자연치료법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검사를 해보니,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암이 진행한 상태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환자분은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지만 암의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 불과 1주일만에 뇌로 전이되었고 곧 임종을 맞게 되었습니다. 많은 환자를 보지만 이런 환자의 경우 의사로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보람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한 번은 50대 여자분이 소화불량으로 내원하셨습니다. 검사를 해보니 위가 두꺼워지면서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진행성 위암을 의심해서 여러 번 반복적인 조직검사를 했지만 암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보통 위암은 위점막에서 병변이 생겨 아래층으로 진행해가는데, 간혹 그 순서가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조직검사에서 잘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수

개월 뒤에 검사를 다시 할지, 바로 수술을 하자고 권유할지 의사로서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환자분이 주치의를 믿고 진단적 수술에 동의하였고 수술 결과 진행성 위암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만약 진단이 지연되었다면 몇 개월 사이에 다른 부위로 암이 퍼져서 근치적 수술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환자와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기회였습니다.

다른 모든 질병도 그렇겠지만 암 환자의 치료는 단지 수술 칼을 잡는 외과의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단에서 치료, 그리고 추적관찰에 이르기까지 병원의 통합적인 진료 시스템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에 따라 환자의 예후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 객관적인 통계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협진이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각 단계별로 중복 투약 및 검사가 시행될 수도 있고 이로 인한 부작용은 고스란히 환자 몫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통합 시스템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행힌 것은 우리 병원에서 이런 흐름에 대해 인식하고 소화기센터에서 협업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앞으로 환자들을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참 기쁘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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