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형 전 문화원장

1983년 당시는 5공 계엄정국이었기 때문에 당정협의 여론조사 등도 전혀 없었다. 또한 일본은 당시 한국의 정치 혼란을 틈타 우리 역사를 왜곡하려 했다.

따라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국민들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목천에 450억 예산으로 독립기념관을 건립하게 되었다.

또한 그 당시 이 지역 경기도 반월 출장소가 향후 시로 승격한다는 신문보도를 접하게 되었다.그러면 시 명칭은 정부 계획대로 반월시가 됨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과연 반월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의문점을 갖고 서울대 규장각을 방문하게 되었다. 동국여지승람 '안산군읍지' 편을 열람해 보니 첫페이지에 안산은 고려 11대 문종 탄생지며 충렬왕때 시흥,과천은 속현 상태서 안산을 주군으로 승격시킨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제는 1910년 한일 합방 후 이러한 무서운 사실을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을까? 따라서 일제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시흥,과천은 살려두고 우리 민족정기 말살차원에서 일반변경(안산→수암면)이 아닌 안산을 말살시켰다고 역사해석 하게 된 것이다.

극일로 가는 길은 목천에 독립기념관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천년역사 안산 지명은 일제가 말살시켰으니 그 안산 지명을 되찿아 이미 계획된 반월을 취소하고 안산시로 명명함이 목천의 독립관 보다도 더중요한 정신적인 면의 극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정부에 건의 했다.

1970년 후반기 신도시 계획에 따른 토지 수용 시 원주민에 대한 토지 보상금을 정부에서는 너무 부족하게 지급하는 실정이었다.(전.답 평당 시세 5~6천원을 5분의 1인 1천원에 불과함) 따라서 원주민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부족했으나 정신적 보상 측면에서라도 신도시명은 안산시로 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러한 문제를 당시 공개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판단 할 당시,종합민원실을 이용하여 개인적으로 대정부 건의를 하게 되었다. 당시 내무부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여당에도 건의하라는 담당자 주문으로 민정당 총재에게 건의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1986년 1월 1일 일반적으로는 예상치 못한 역사적인 안산시가 마침내 탄생하게 되었다. 실로 감개무량한 순간이었음을 내 어찌 말로 표현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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