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성어다. 두산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역지사지를 설명하고 있다.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 상(上)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무슨 일이든 자기에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와는 대립된 의미로 쓰인다.

그렇다. 조금만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모든 어려움에는 답이 있다. 특히 하소연하는 사람이나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거나 내가 속한 집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해결책이 요원한 경우가 다반사다.

안산시의회가 내년도 예산안 2조1천억원을 두고 심의가 한창이다. 사안에 따라 단일안건을 두고 수백억원의 예산을 심의하기도 하고, 겨우 100만원 밖에 안 되는 예산을 심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100만원의 예산도 수백억원의 예산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바로 시의회가 정례회에서 하는 본예산 심의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행정위원회 의원들의 예산심의는 주목을 받고 있다.

전준호 의원은 적은 예산으로 동행정복지센터를 야간에도 주민들이 회의장소 등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공무원들이 시민입장에서 생각해줄 것을 주문했다.

공무원이 편하겠다고 생각하면 야간에 문을 열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시민입장에서 생각하면 약간의 예산만 투입해도 얼마든지 야간개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은경 의원은 어르신들 경로위안잔치를 벌이면서 동별로 날짜를 따로 잡아 시행하면 공무원도 힘들고 어르신들도 힘들다고 말했다. 동네끼리 경쟁이 일어나거나 타동네사람 기피현상으로 불편한 행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동일한 날 동일한 시간에 같은 행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주문했다.

혹시 있을 부정적인 이미지 시각을 사전에 없애버리려는 강한 의지로 모두가 좋아하는 일정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유화 의원은 공무원이 조금 편하자고 직접 할 수 있는 사업을 위탁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손쉽게 다른 단체에 위탁하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 볼 것을 주문했다. 어쩔 수 없이 위탁사업을 처리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한 곳에 몰아주지 말고 나눠주는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또 위탁을 주었으면 과연 제대로 사업을 수행했는지 확인도 꼼꼼히 할 것을 주문했다.

김진희 의원은 부족한 설명을 위해 많은 자료를 요구했다. 예산집을 보지 않았다면 요구할 수 없는 자료들이 많았다. 날밤을 세가면서 예산집을 보았다는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도시환경위원회 박영근 의원은 예산만 쏟아 부을 것이 아니라 적은 예산으로 주민들이 좋아할 사업을 선정해보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화랑유원지 수초제거사업을 예로 들었다. 해마다 수억원씩 예산을 들여 수초를 제거할 게 아니라 주민친화형으로 만들면 예산도 들어가지 않고 주민들의 공원 이용도도 높아진다는 반론을 편 것이다.

모든 것은 시민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시의원들도 그렇고 공직자들도 그렇고 시민들을 위해 예산을 다루고 자료를 요구하면 본인들도 떳떳하고 뒷말도 없다.

그러면서 역지사지까지 한다면 금상첨화다.

내년이면 선거다. 그동안 부족했던 것을 이번기회에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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