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창 취재국장

최근 저녁 8시쯤 시내 한 커피숖에서 통일가수를 만났다. 10시가 넘도록 대화가 오고갔다. 끝

내지 않으려는 대화를 내가 먼저 멈췄다. 다음에 또 오늘 못다 한 얘기를 나누겠다고 확약한 이후다.

대화를 계속하면 밤을 새워도 다 못 다할 분위기였다. 그만큼 대화에 굶주려 있었고 자신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음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통일가수는 지난 2007년 한국으로 넘어왔다. 북한에서 중국에 머무르다 한국에 온 것이 2007년이니까 이미 그 전에 중국으로 탈북한 것으로 보여 진다.

우리는 탈북가수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통일가수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통일을 기대하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는데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통일은 요원하다. 자신이라도 먼저 통일을 위해 일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통일가수라고 불리길 좋아하고 통일노래를 부르며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것이다.

중국에서 한국을 선택한 것도 통일에 대한 강한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 중에서도 안산시를 선택한 이유는 안산에 국가공단이 있고 기업체가 많아 먹고 살기에 좋을 것 같아서 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원을 나오자마자 공단에서 일을 했고 3년 정도 일한 후 돈을 좀 모아 거처를 마련한 다음에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주는 곳이 있으면 악착같이 일을 했고 그 일로 인해 억순이 통일가수라는 별명도 붙었다.

식당일, 막노동일, 강의, 행사, 연기, 영화출연 등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치웠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탈북인들인 새터민을 게으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이 통일가수만은 예외였다. 항상 부지런하고 한국인 보다고 더 일을 잘하고 열심이었다.

“뭐든지 색안경을 끼고 보면 안 됩니다. 북한에서 온 사람도 열심히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봐주지 않기 때문에 선입견이 생기는 것입니다.”

통일가수의 한 맺힌 절규다.

통일가수는 또 말한다.

“공연을 하면 돈이 돼야 하는데 돈 안 되는 일을 해서 힘들고, 역으로 우리를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힘들다. 또 우리를 싸구려 취급하고 공연료를 지불할 때 싹둑 잘라 버리는 안산사람들이 미울 때가 많다”고 하소연도 한다.

사실 통일가수는 북에서 공연단 활동을 한 것을 다시 살려 한국에서 서울예술대학교를 다녔다. 공연기획을 준비하고 학생들과 교수들과 어울리면서 엄청난 인적구성을 만들었다.

거기에다 북한출신 가수들까지 동원이 가능한 기획사를 가졌으니 얼마나 부자인가.

그렇지만 불러주는 곳이 별로 없어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하소연 하고 있다. 어떻게 불러주면서도 공짜 공연만 원하고 공연비를 줄때도 싸구려 취급하고 주는 것이어서 몹시 서운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국에서 살면서 처음에는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했죠.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뭐를 좀 알아서 그런지 적응하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하지만 난 한국이 좋아서 온 북한 공연단 출신으로 더 많은 한국인, 더 좋은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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