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 & 아이디얼리즘》

경기도미술관은 한국국제교류재단, 독일 쿤스트할레 뮌스터와 공동주최로 한국-독일 현대미술 교류전 《아이러니 & 아이디얼리즘 (Irony & Idealism)》을 지난 달 28일부터 열고 시민들 관람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 및 독일 작가 8인과 함께 현대미술의 동향을 선보이는 전시로, 공립미술관 주도로 현대미술을 통한 문화교류를 실현하고자 기획되었다. 한국에서 김홍석, 남화연, 배영환, 안지산, 독일에서 마이클 반 오펜, 만프레드 퍼니스, 비욘 달렘, 윤종숙 작가가 참여해 영상, 설치, 조각, 회화 작품 50여점을 소개한다. 본 전시는 작가의 의식과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아이러니, 충돌과 대비를 여러 모양으로 드러낸다. 작업에 수반되는 작가의 질문과 탐구는시공간을 가로지르며, 결국 인간의 욕망, 노동, 평화, 우주 등 손에 잡히지 않는 관념들을 시각화하는 현대미술의 다원성을 확인할 수 있다.

김홍석 <공공의 공백 Public Blank> 피그먼트 프린트,

각 73x103cm, 2006-2008 ⓒGimhongsok

1990년대부터 비디오, 조각, 회화, 퍼포먼스, 설치작업을 아우르며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쳐온 김홍석은 이번 전시에서 그간의 '노동' 연작에 이은 설치와 영상 작업을 선보이며 현대미술의 아이러니를 가시화 한다. 작가를 중심으로한 작품의 제작 과정과 이를 유통하는 소비구조, 나아가 그 결과물을 작품으로 만나는 관람자의 인식에 이르기까지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예술적 해석을 접할 수 있다.

남화연 <욕망의 식물학 The Botany of Desire>

2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8’ 23”, 2015 ⓒNam Hwayeon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중인 남화연은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선보인 2채널 퍼포먼스 영상 <욕망의 식물학>을 경기도미술관에 다시금 구현한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튤립 사재기 현상과 ‘튤립포마니아 (Tulipomania)’에 대한 리서치를 통해 작가가 감지한 아이러니의 현상학을 안무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꿀벌이 꽃을 탐하는 이미지와 오늘날 주식시장의 목소리를 병치한 영상은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며, 자연과 인간, 사회에 내재된 욕구를 들여다본다.

배영환은 2012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대형 설치작 <걱정-서울 오후 5:30>을 2017년 경기도미술관 전시를 위해 재구성한다. 작가는 미술관을 작품을 분주하게 스쳐보고 떠나는 공간이 아니라 머물며 생각하는 공간으로 제안한다. 미술관 전시장 밖 테라스까지 확장된 이 작업은 경기도미술관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진정 마주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으며 관람객들의 걸음을 미술관 밖으로 이끈다.

안지산 <잔잔한 물결에서의 삶A life in the Ocean Wave>, 캔버스에 유채, 200x290cm, 2016 ⓒ조현화랑

 

네덜란드에서 데뷔 후 2015년부터 국내 활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성장기에 있는 안지산은 주요 회화 작품 8점을 전시하며 이미지의 실체를 탐구하는 화가의 질문을 담아낸다. “떨어져 사라지다” 라는 주제로 부재의 흔적들, 상실과 불안, 슬픔의 감정을 회화로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입체로 연출한 모형을 보고 그리거나, 물감을 몸에 바르며 촉각적인 경험을 시각화한다. 이러한 신체적 감각은 안지산이 화가로서의 실존을 확인하려는 의지이자, 작가가 느낀 것을 회화를 통해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를 보여준다.

독일 참여 작가의 경우, 유럽 미술 현장에서 세계적인 작가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한 독일 중진 작가들로, 그들의 신작과 주요 구작을 한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만프레드 퍼니스 <진행 Ⅲ Progress Ⅲ>, 목재, 라커, 가변설치, dimensions variable, 2012 ⓒKonrad Fischer Gallery. Düsseldorf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만프레드 퍼니스는 건축에 사용된 합판, 콘크리트, 벽돌 등 익숙한 재료를 조합 혹은 재조합하면서 날 것의 재료들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새로이 생겨나는 관계성에 주목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베를린 특유의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하는 만프레드 퍼니스의 작업은 건축의 잔해와 흔적을 드러내면서 새로이 쓰여지거나 지워진 역사를 다시 마주하게 한다. 1990년대부터 급진적인 작업을 발표하면서 독일현대조각에서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 했으며, 2007년 뉴욕 뉴뮤지엄 <Unmonumental>전을 통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비욘달렘 <은하수 Milky Way>

목재, 철, 자갈, 바니쉬, 175x260x40cm, 2010

ⓒSies + Höke Galerie

비욘 달렘은 우주론, 천문학, 입자 물리학, 양자 역학, 물리학 등 과학과 예술의 접점에서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우주의 신비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이어왔다.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두뇌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단지 예술을 통해 시각화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작가 자신이 구성한 우주 속에 정교하게 표현해왔다. 각목, 백열등 전구, 유리 등 부서지기 쉬운 재료들로 구성된 조각은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인지를 은유한다. 2016년 일본 모리미술관 전시로 호평받은 비욘 달렘은 2006년 부산비엔날레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바 있다.

뒤셀도르프와 뮌스터에서 활동하는 마이클 반 오펜의 작업은 19세기의 이탈리아, 독일  화가들의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에서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사진을 전공했던 작가는 재현을 목적으로 존재했던 페인팅이 19세기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재현이 아니라, 개념을 표현하는 현대미술로의 전환을 맞는 시점에 주목한다. 마이클 반 오펜은 기존에 그려진 회화에서 이미지 요소들의 형태를 소거하는 방식으로 19세기의 화가와 오늘날의 화가 사이를 가로지른다. <심볼릭 익스텐션>이라는 연작 타이틀은 이러한 시간성과 추상성을 함축하고 있다. 경기도미술관에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신작을 포함하여 10여년에 걸친 주요 작업 14점이 전시된다.

윤종숙<산맥 Mountains Gebirge>, 캔버스에 유채, 170x200x3cm, 2016 ⓒJongsuk Yoon,  photo: Achim Kukulies

한국 온양에서 태어나 29세에 독일로 이주하여 뒤셀도르프에서 활동하는 윤종숙은 2012년부터 이어온 <마인드 랜드스케이프> 유화 연작을 선보인다. 그림 속에서 언뜻 보이는 산등성이, 굽이진 길, 정자와 같이 눈에 익은 풍경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작가 마음속에 담겨 있는 풍경의 반영으로 한국 전통 수묵화와 독일 추상표현주의를 동시에 연상시킨다. 동양의 서예나 수묵화에서 느껴지는 붓 터치와 닮은 선의 사용은 작가의 독특한 회화 언어로 자리잡았다.

본 전시는 독일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디렉터 그레고 얀센(Gregor Jansen)이 독일 작가 4인으로 구성한 초기 전시 프로포절이 시발점이 되어, <아이러니 & 아이디얼리즘>의 주제를 한국 작가들과 심화시켜나가는 과정으로 확대 추진되었다. <아이러니&아이디얼리즘>은 2017년경기도미술관을 시작으로, 서울 KF갤러리, 2018년 독일 쿤스트할레 뮌스터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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