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 전 동산고 교장

사람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세상을 보는 저마다의 창(昌)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사물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생각의 포괄적인 틀을 세계관(worldview)이라고 한다.

태어나서부터 언제부터인가 이성에 눈을 뜨게 되며, 주위의 자연을 보며 인간을 볼 때, 공동체를 보며 자신을 보게 될 때 세계관은 형성된다. 이것이 인간의 삶이다. 이러한 경험에 의해 알아가게 되는 인식은 점차 인간의 원초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인생의 생명존재론,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진리가치론 같은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생각하고 대답하는 과정에 삶의 인식과 가치, 세계관이 형성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들이 답하기에 너무나 어려워, 회피하며 살고 있다.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 없이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 실제의 본질(reality)을 알 수 있는 지성의 눈을 스스로 닫아버린다. 다음으로 상대적이며 물질적인 문화가 우리의 삶의 행동과 신념형성에 영향을 끼치도록 방치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열심(성실)히 살았어’에 위안을 삼는다. ‘남보다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많이’, ‘winning is the only thing(오직 승리)’라는 인생모토를 세워 한평생을 바쁘게 살아온 것을 성공이라 착각한다.

이렇게 살던 사람들은 인생여정 어느 시점에서 다양한 요인들로 인하여 큰 충격을 접할 때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외로움을 느끼며 삶을 재조명해 보기도 한다. 이 때, 본연의 지성의 눈이 다시 열리고, 자신의 심연을 되돌아보며 삶의 방향을 새롭게 수정하기도 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경험하였던 삶의 문화와 교육, ‘오직 성공’의 행동양식으로 관습화되어 형성된 자신의 신념체계(세계관)의 틀로 결정하면 미궁에 빠지기 쉽다. 그 틀만을 가지고 자기의 삶을 이해하고 적응하고자 노력하게 되면, ‘본질’에 대한 정답없이 ‘어떻게’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삶을 질을 높이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른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유(思惟)와 삶의 전 영역을 통일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선한 생활을 정의하고 인생의 희망과 목적을 올바르게 찾기 위해서이다. 올바른 의식을 기르고 가치로운 행동을 하기 위해서다.

세계관은 우리 모두가 매일 일상생활에서 당면하는 경험의 문제이며,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는 직관적인 이성에 관한 문제이다.

2018년 6월에 자칫하면 온 국민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지방선거시 헌법 개정도 동시에 하려고 한다. 현행 헌법 제36조 1항 ‘혼인과 가족 생활은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 되어야 하며...’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양’ 또는 ‘양성’을 삭제하고 ‘성 평등’으로 바꾸려고 시도를 하고 있다. 또는 ‘모든 사람은 존엄과 평등에 기초하여 혼인하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라고 변경하려고 한다. 이렇게 바꾼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국민의 세계관을 왜곡시키는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아들이 결혼을 한다면서 그대의 며느리로 ‘남자’를 데리고 오며, 딸이 결혼을 한다면서 그대의 사위로 ‘여자’를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해괴망칙한 일인가? 이를 위하여 정부가 위탁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진행되는 여론조사 내용이 교묘하게 국민을 ‘속임수의 덫’을 사용하고 있다.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하여 성평등을 지지하느냐'라고 묻고 있다.

마치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듯한 질문이지만 헌법개정시 동성애나 동성혼을 포함시키기 위한 교묘한 대국민 속임수다. 이러한 헌법 개정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엄과 인권훼손의 문제다. 올바른 세계관은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높아진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조국의 앞날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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