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정<한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우울증에 대한 오해, 마음의 감기?

 

양문정<한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선생님,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데 저는 왜 이리 이겨내기가 힘들죠? 정말 죽고 싶어요. 마음이 약해서 그런가요?”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불러도 될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음의 감기라는 말은 우울증에 적당한 별명은 아니지 싶다. 첫째로, 마음의 감기라고 하니 마음이 약해서 걸리는 병이라는 오해가 생기고, 둘째로, 감기라고 하니 감기처럼 저절로, 혹은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인데 의지가 약해서 스스로 이기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수년전 미국에서 잠시 생활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외국생활이 처음이던 터라 비록 큰 문제없이 적응을 해나가고 있긴 했어도 아직은 언어와 음식, 사고방식 등 문화가 다른 곳이니 만큼 사소한 것들로 의기소침해지고 조심스러워지는 나날들이었다. 어느 햇볕 따스한 봄날 오후, 집근처 초등학교의 운동장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한국인 아주머니 한분이 활짝 웃으며 은발의 외국인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보아하니 상대방은 전혀 한국말을 모르는 분임이 분명한데도 서투른 영어를 하다가 잘 안되면 한국말까지 섞어가며 스스럼없이 소통을 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여는 그녀의 얼굴에 활달한 미소가 오간데 없이 사라져 평소의 그녀 같지 않았다. 가을이 되면서부터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고 기분이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더니 집안일조차 하기가 점점 버거워 지금은 그냥 누워있기만 한다고, 이제 고작 4학년인 큰 딸이 아침에 동생의 도시락까지 싸서 학교에 가고 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우울증 중에서도 가장 증상이 심한 주요우울증에 해당했다. 치료를 권하자 마음이 힘든 것인데 약을 먹는다고 소용이 있느냐며 반신반의하던 그녀는 권유를 받아들였고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조금씩 수면과 식욕이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마음이 약하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원인으로 볼 때 기분, 식욕, 수면 등의 조절에 관여하는 뇌신경전달물질이 저하되어있기 때문에 이를 교정해주는 항우울제를 복용해야 하고, 관련된 내면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담치료가 병행되어야 하며, 과도하게 쌓여온 심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도록 주위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또한, 감기 같이 가벼운 질환이라고도 할 수 없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심신의 고통이 오래 지속되어 잘 해오던 직업생활, 대인관계, 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울증에서 회복된 후, 자기 자신과 자신에게 중요한 타인에 대해서 이해가 깊어지고, 좀 더 소통하며 좀 더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분들을 보면서, 삶에서 우울증을 만난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우울증을 치료받고 나서 많은 환자분들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선생님, 뭔가 모르게 삶이 달라졌어요. 그리고 전보다 더 괜찮아요. 사는 게 재미가 나요.”

<문의 8040-1114(내선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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