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전 동산고 교장>

[지식 구성을 방해하는 효과]

마르셀 빠뇰(Marcel Pagnol)의 유명한 희곡 ‘토파즈’에서 교사 토파즈(Topaze)는 12살 된 학생들에게 ‘양의 복수’를 나타내는 불어단어 ‘des moutonsse’의 받아쓰기 지도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의 어깨 너머로 잠시 들여다 보는데 잘 받아쓰지를 못하자 안타까운 마음에서 des moutons, des moutonss라고 불러준다. 그리고는 마침내 des moutonsse라고 불러주고 만다. 즉, 그는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양해를 구하면서 그것이 복수라는 명백한 힌트를 주게 된다. 이처럼 교실수업에서 교사가 학생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러한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대신, 그러한 학습 환경을 오히려 일소(一掃)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토파즈 효과 (The Topaze Effect)라고 한다. 이 토파즈 효과는 학생이 문제 풀이를 할 때 교사가 원래의 문제를 여러 개의 매우 쉬운 문제로 나누어 학생이 그 각각의 문제에 차례로 답하도록 함으로써 원래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호작용 패턴의 실패하는 한가지유형이다. 또한 이를 일명 깔때기 패턴(funnel pattern)이라하기도 한다.

이 효과는 교사가 학생들의 학력을 높여야겠다는 지나친 의무감에 매였을 때 일어나는 심리적인 압박감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포퓰리즘 정책, EBS교재의 수능연계 출제]

전형적인 토파즈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교육 정책들 중에 하나가 EBS교재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의 연계 출제이다. 교육부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하여 수능시험문제 70%이상을 EBS방송교재와 연계출제 한다는 정책을 10여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인문계 고2,3교실에서의 수업교재는 EBS방송교재이다. 많은 학생들이 고득점을 획득하기 위하여 열심히 암기한다. 과연 얼마나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까? 이 정책이야말로 청소년들의 학력과 지식의 개인화와 문맥화, 탈개인화와 탈문맥화를 이루는데 큰 방해 요소가 되고 있다.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조장하는 당랑규선(螳螂窺蟬)의 정책인가? 전형적인 대중주의(大衆主義)정책 중의 한가지이다. 수능의 오지선다형 문항 출제도 학생들에게 어떤 문제의 해결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찍어서 요행을 바라게 함으로 성실과 노력이라는 인성함양에 치명적인 독소를 제공하고 있는 판국에 EBS교재의 수능연계 출제는 오직 답을 목표로 하는 인생의 역전 요행을 가르치는 좋지 않은 정책이다. 학생들의 학습능력과 사고력의 저하를 가져오며 인성의 함양에도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사고력 저하, 인성 함양의 저해 요소]

물론, 우리나라 학교교육이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 줄 만큼 여유롭지는 않다. 그리고 입시제도 역시 다양한 결론을 인정해 줄 만큼 학부모들이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토파즈 효과나 깔대기 패턴에 한번이라도 맛을 본 순간부터 그 사람의 인생은 심각한 정서적, 인성적, 지적 장애의 시작이 된다.

교사는 교실에서 꼭 가르쳐야 할 일련의 교육목표 수행을 위해서 학생들이 해야 할 대답을 미리 결정하여 유추과정의 단편적 사용으로 학생의 지식 구성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국가 역시, 책에 쓰여진 내용 그대로를 답습하게 하는 입시 정책을 계속 진행하여서는 안 된다.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도록 하는 견리사의(見利思義)의 정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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