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전 동산고 교장>

[외통수, 홉슨의 선택(Hobson's choice)]

다른 대안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양자택일의 질문을 강요하는 오류를 ‘홉슨의 선택(Hobson's choice)’이라 한다. 이는 ‘주어진 것을 갖느냐 안 갖느냐의 선택’을 의미한다. 17세기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마구간을 운영하던 토머스 홉슨은 케임브리지 대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말을 빌려주는 말 임대업을 했다. 그는 선입선출의 원칙을 적용시켜 상태가 좋은 말은 안쪽으로, 마구간 입구에는 볼품없는 말들을 매어두고 ‘입구 쪽의 말이 아니면 빌려갈 수 없다’고 했다. 학생들로선 그런 말을 빌리느냐, 빌리지 않느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런 선택을 '홉슨의 선택'이라 한다. 주어진 것을 받거나 아니면 그만 두거나(take it or leave it)를 뜻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통수의 선택의 경우(have no choice at all)를 의미한다.

[홉슨의 선택을 즐기는 문정부]

요즈음 국가정책을 바라보면 400여년 전 케임브리지 대학생들이 겪었던 상황과 오버랩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사고 정책, 사드배치문제,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한 에너지 정책, 적폐청산, 인사선발 5대 원칙에 따른 공직자 임명 등 다양하다. 자신을 지지한 세력의 요구를 수용하다보니 다른 대안은 봉쇄되고 스스로를 깊은 블랙홀의 늪, '홉슨의 선택'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형국이다.

공부 잘하는 자식을 둔 강남 좌파 진보주의자들 상당수가 자사고 지지한다. 교육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은 이들에게 날카로운 잽을 한 방 맞은 모양새이다.

인사선발 5대 원칙에 따른 공직자 임명을 위한 청문회를 살펴보면, 그 기준을 통과한 공직자가 있었던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서운 어퍼컷을 또 한 방 맞았다.

사드배치 문제는 선거기간에는 절대 반대, 미국방문 전후에는 환경평가로 달래고, 최근 ICBM급 미사일 도발에는 전격적인 배치로 돌아섰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배치이지만 말바꾸기로 인하여 정권의 신뢰성에 엄청난 균열이 발생했다.

에너지 정책은 지지 세력의 친환경 에너지만 주장하는 외통수에 걸려서 ‘원자력발전소는 나쁜 것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전제하에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산업부 장관은 ‘양의 탈을 쓴 이리’의 모습으로 국민을 저능아로 보는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5년 내에는 전기세를 오르지 않는다’라고 홍보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 5년 임기 후에는 반드시 전기세가 엄청나게 오를 것이다’라는 역설이다.

사드배치문제로 서민경제와 외교에 악영향을 미친 상태에서 전 정권의 각 종 문서 공개는 정치적 협력은 없고 이익 추구를 우선하는 도의(道義)가 없는 정권의 이미지를 갖게 했다.

[회광반조(回光返照) 이기에 포용의 정치 필요]

이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도양단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정책이 비일비재하다. 당선된 후 각 당을 찾아갈 때는 기대가 얼마나 컸던가? 복잡한 이해관계의 절충이나 타협을 위한 상생과 협력의 정치, 국민을 아우르는 포용의 정치가 눈에 보이는 듯 했었다.

비스마르크는 ‘정치란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의 기술이며 차선의 기술이다'라고 했다. 정치는 사회문제를 냉정하게 파악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가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를 위해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다양하게 늘릴 필요가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have no choice at all) '이것 아니면 관두라'는 홉슨 식의 정치는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막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정책 결정은 참혹스러운 것과 불쾌한 것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사소한 일이 가장 큰 일을 결정한다’라고 했다. 5년 임기의 정권은 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하늘이 밝아지는 회광반조(回光返照)와 같이 길지가 않다. 따라서 지지 세력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권이 돼야 한다.

헌법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권력은 지지 세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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