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영 미술사학 박사, 본지 부설 아카데미 초청강연
옛그림에 담겨있는 이야기 통해 우리의 삶을 재조명

본지 부설 안산시CEO아카데미는 13일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게스트하우스에서 윤진영 박사를 초빙해 86번째 강연을 가졌다.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 박사는 이날 강연에서 옛그림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선조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재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옛그림에서 현재 살아가는 시대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윤 박사의 강연을 요약.게재한다.(편집자주)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기억은 짧지만 기록은 길다. 100여년 전 찍은 한 장의 흑백사진이 있다. 이 사진에 남겨진 한 줄의 기록만으로 우리는 주인공의 이름과 가족 관계, 직업, 생활수준 등 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사진의 배경인 병풍은 순종의 회복을 기념해 제작한 것으로 현재는 미국 오리건대학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데 당시 병풍을 구입하며 발행된 영수증을 보관하고 있어 정상적인 경로로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병풍은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해외문화재 보존수리 지원사업에 선정돼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역사속에 묻힐수도 있었겠지만 이처럼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사진에 남겨진 한 줄의 기록 때문이다.

15세기 세종시대는 각종 강력범죄가 흉흉한 시대였다. 특히 1428년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세종은 효행사상을 강력하게 심어주기 위해 실천사례집이라 할 수 있는 삼강행실도를 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실제 효행을 담아낸 삼강행실도는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그림을 넣어 제작했다. 화재가 나자 자신의 딸 보다 아버지를 업고 나오거나, 어머니 반찬에 손을 대는 자식을 묻으려는 부모, 부모의 건강을 위해 손가락을 자르는 자식 등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는 내용이 그림과 함께 담겨지면서 백성들에게 강한 충격요법을 제시했다. 삼강행실도는 전국적으로 배포됐지만 변화가 일어나며 또 다른 효행사례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렸다.

김홍도의 작품 ‘서당’은 250년전 교육 현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훈장 앞에 있는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아 맞고 울고 있는데 아직 맞기 전이다. 아이는 사정이 있어 숙제를 해오지 못했는지 뭔가 억울하다는 표정이 역력해보인다.

또한 주변의 아이들도 제 각각 다양한 표정과 행동으로 자신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속에는 많은 얘기를 담고 있어 보는 사람마다 감상하고 해석하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 또한 매력이다.

김홍도의 ‘가마니 짜기’는 평민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조선시대 출세는 과거급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하는 것인데 특히 고향, 나이, 동기생 등 공직내에 다양한 사조직이 성행하며 끈끈한 관계를 형성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림을 그려 자신들의 모임과 만남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 그림에는 당시의 시대상과 분위기를 잘 담아내고 있다.

서민의 삶을 그려낸 그림이 바로 풍속화다. 김홍도의 ‘점심’은 양반들이 그린 그림과 구도나 동작 등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유난히 크게 그려진 밥그릇인데 17세기 당시 성인 남성들은 지금보다 7배나 많은 밥을 먹었다고 한다.

아마도 보릿고개 등으로 먹거리가 보장되지 않는 시절이라 이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먹을 것을 ㅈㅇ장할 공간도 없었다는 것도 과식본능을 자극하는 요소가 된 것 같다.

김홍도가 땀을 흘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주로 담아냈다면 신윤복은 애정사, 양반, 기생 등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담아내며 풍자했다.

신윤복의 풍속화 ‘청금상련’은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연꽃을 감상한다는 내용인데 그림에 등장하는 6명은 제 각각 다른 생각과 행동을 보이며 연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제목을 ‘삼인삼색’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또한 ‘단오풍정’은 기녀들의 휴일 풍경을 담아냈는데 목욕하는 모습은 당시 정황으로 볼 때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이었을 것 같다.

서양의 초상화가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보여지는 모습을 중시했다면 동양의 초상화는 외형 뿐 아니라 분위기나 인품 등 정신까지 담아내며 변치 않는 본연의 모습을 추구했다. 특히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은 당시 왕과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콘텐츠다.

하지만 아쉽게도 역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은 남아 있는 것이 3점에 불과하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4천여점의 문화재가 부산으로 옮겨져 보관됐는데 화재로 인해 3천5백여점이 소실됐다.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문화재 수난사라고 볼 수 있다.

옛그림이나 사진은 당시 정황이나 시대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또한 지금 현재 남겨지는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이 후세에도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정리:유돈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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