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미 SBS 아나운서, CEO아카데미 초청강연 열기 가득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성공한다

똑 부러지는 말투로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대한민국 대표 SBS 아나운서 윤영미.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도 25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억척스런 자기계발로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야구 여성 캐스터’라는 수식어까지 달려있다. 39번째 안산시 CEO 아카데미는 윤영미 아나운서의 생존열정과 스피치에 대한 노하우를 경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편집자주>

‘그건 아니고’의 스피치 습관은 아주 안좋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그건 아닙니다.’라고 먼저 결론을 짓고 말하기 보다는 ‘아! 좋은 방법입니다. 한번 반영해 보겠습니다.’라는 일단 긍정적인 답변을 통해 들어줄 수 있는 스피치 방법이 좋습니다.

일례로 76년 창간한 ‘디자인하우스’의 이영혜 대표를 옆에서 20여년간 보좌한 참모를 알고 있는 데 그분은 정말 단 한번도 노(NO)라고 대답하지 않았단다.

정말 황당무계한 일 주문을 하더라도 일단 받아들이고 이후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이지만 이를 일상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스피치 3대 요건중 가장 중요한 것이 피드백이다. 피드백은 맞장구다. 화자가 말을 할 때 눈을 바라보며 맞장구를 쳐 주라. 대화에선 맞장구가 가장 중요하다. 부인이 뭐라고 말할 때 들어주고 동조하라. 진심을 담은 스피치가 좋은 스피치다. 유명한 식당을 다녀보면 유명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공통된 이유는 정성이 담긴 음식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식당 주인이 정성과 진심을 담긴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놓는 것이 맛으로 느껴지는데 유명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경청(傾聽)이 필요하다.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 최근 화두로 오르내리는 경청이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이 전 회장이 ‘대화는 말하는 것이 아니고 듣는 것이다’라는 말한 이유도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주고 있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누구나 상대방이 먼저 다가와 주길 바란다. 중요한 것은 먼저 말을 붙이는 자가 용기 있는 자이고, 대화를 주도하게 된다는 것.

'그건 아니고'란 단정적인 말은 삼가라

특히 직장 상사나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은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라도 근엄함을 유지하려고 한다.

내가 높은 양반들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말을 거는 것은,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그들의 외로운 틈을 잠깐이나마 메우고, 작은 위로의 시간이 되어 드리고자 철없이 먼저 말을 건다. 한번은 엘리베이터에서 회장님을 만났는데, 마침 매년 회사에서 선물로 주는 쌀 한 가마니 얘기를 꺼냈다. “회장님이 주시는 쌀 덕분에 제가 이렇게 튼튼해요, 쌀이 아주 좋던데요?” 그날 간부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팀장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회장님께서 직원들이 쌀 선물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며 무척 뿌듯해하시더라구. 그런데 누가 그런 얘기를 했지?”

나는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이렇듯 진심이 담긴 솔직한 한마디는 우리를 잠시나마 딱딱한 일상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부드럽게 분위기를 유도하는 윤활유 같은, 혹은 창가의 자그마한 화분 같은 것이 아닌지.

나는 결코 출세욕에 불타거나, 누구에게 잘 보여 이득을 취하려고 애쓴 적은 없다. 나는 이게 바로 내 20년 직장 생활의 노하우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엄연히 직장생활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게 또한 현실이다.

그럴 때는 나도 어쩔 수 없이 로비를 할 수 밖에 없다. 다만 나쁜 의미에서의 뒷거래가 아닌, 바로 진심이 담긴 애교 있는 로비 말이다. 여자는 여자이기에 어쩔 수 없는 단점도 많지만, 비례해서 여자이기에 가지는 장점 역시 무궁무진하다.

진실을 담은 스피치가 중요하다

남자라면 오히려 엄두도 못 낼 일을 나는 여자이기에 겁 없이 시도해볼 용기가 나기도 한다. 1996년 내 늦깎이 결혼식 때였다. 나는 과감하게 회장실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제가 결혼하게 돼서 회장님께 청첩장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네, 회장님께 직접이요?” 당황하던 비서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솔직히 무척 떨렸다. 그래도 나쁜 짓해서 불려온 것도 아니기에 나는 당당하게 회장실로 들어가 용무를 말씀드렸다. 회장님 역시 처음에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시더니, 이내 받아든 청첩장을 꼼꼼하게 확인하시고는 무척 반가워하셨다.

“꼭 행복한 가정 이루세요. 결혼했으니 방송 생활 더 열심히 하시구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회장님의 덕담에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회장실을 빠져 나왔다.

바쁜 결혼 준비에 회장님과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됐는데, 결혼식 당일 깜짝 놀라고 말았다. 회장님께서 비서실을 통해 개인적으로 거금 100만원을 축의금으로 보내오신 게 아닌가. 1996년이니 당시 100만원은 굉장히 큰돈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개 평사원으로 청첩장을 들고 회장실을 방문한 사람은 내가 최초였고, 또 그래서 회장님이 너무 기분이 좋아 100만원이란 돈을 축의금으로 선뜻 보내주셨다는 이야기였다.

직접 축의금을 받은 사람도 내가 처음이라나? 돈이 문제가 아니라 철없는 용기랄까? 내 딴에는 약간의 배짱과 좋은 뜻으로 회장실을 방문했는데, 그것이 회장님과의 자그만 커뮤니케이션을 가져온 결과였다는 말이다. 내 이런 무모한 용기가 어찌 회장님에게만 통용되겠는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과감히 도전하라

누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우리는 순간순간 느낄 수 있지 않던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어느 순간 상대방도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보기에 그럴듯한 관계라도 진심이 없다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우선 나의 진심을 보여라. 그 다음 상대방에게 맡겨라. 내 진심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깨끗하게 단념하면 그만이다. 먼저 진심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진심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투정하지 말라.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방송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 아나운서가 한 번도 도전한 적 없는 스포츠 중계에 내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했다. 내가 결정한 것은 바로 야구였다. 결심을 굳힌 나는 1년 동안 프로야구 리포터로 자원해 관중 인터뷰, 선수 인터뷰를 하며 경기장을 드나들었다. 생판 모르던 ‘야구’에 대한 본격적인 도전이었다.

기본부터 익혀나가며 나는 하나의 원칙을 정했다. 1년 동안 신문은 야구 면만, 책도 야구 관련 책만, 비디오도 야구 중계 테이프만 보고, 차에서도 야구 중계 테이프만 듣겠다는 원칙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새벽 5시에 출근해 6시 라디오 뉴스를 하고, 내가 맡은 방송 녹화를 끝내고는 곧장 잠실야구장으로 향했다. 밤 10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면 피곤에 절어 녹초가 됐지만, 자기 전에 또 야구 중계 테이프를 2시간쯤 보고 잤다.

1994년 4월, 프로야구 개막전부터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다음날 거의 모든 매체에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캐스터 윤영미’에 대한 기사가 연일 올랐다. 당시 기사를 스크랩 해놓은 것이 앨범으로 3권이나 되니 얼마나 유명세를 탔는지 짐작할 만하다.

자신만의 강점을 찾아 밀고 나가라

나는 꿈을 이뤘다. 물론 그 길은 예상처럼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여자 캐스터의 중계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았다. 수긍이 가는 비판도 있었고, 인신모독성의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모든 비판을 감내하며 꿋꿋하게 2000년까지 6년 동안 라디오 중계를 했다. 고백컨대 나의 야구 중계 역시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 개인의 역사로 볼 때, 야구 중계는 내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가슴 속 그득히 차오르는 충만한 성취감, 그리고 앞에 놓인 목표를 향해 가는 추진력이란 힘, 풀지 못할 과제는 없고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는 그 신념이 야구 중계가 나에게 준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다.

우리는 간혹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불평불만을 터뜨린다. 단지 세상이 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아 못마땅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여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을 뭐로 보고?”하는 식의 으스대는 제스처다. 뭐로 보긴? 보이는 대로 보지. 사람들은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 사이에서 많은 혼돈을 경험한다.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어쩌다 환경 탓으로, 피치 못할 사정상 요모양 요꼴로 있는 거지, 사실 나는 굉장한 잠재력이 있단 말이지’라는 생각. 보이는 것은 하찮지만 나를 무소의 뿔처럼 알아달라는 것은 글쎄 절대자에게나 부탁할 일이 아닐까.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고, 선생은 선생다워야 한다. 사장은 사장다워야 하고, 사원은 사원다워야 한다. 택시 기사는 기사다워야 하고, 경비는 경비다워야 하고 주인은 주인답고, 손님은 손님다워야 한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며, 아이는 아이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 마찬가지로 여자는 여자다울 때, 남자는 남자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 따라서 윤영미는 윤영미 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

일반 사람들은 아나운서도 유명 연예인처럼 높은 수입에 최상위권 수준의 생활을 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아나운서도 매달 월급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직장인일 뿐이다. 요즘은 아나운서들이 방송에서 재미삼아 1만원 밖에 안 되는 출연료를 밝혀 출연료에 대한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리긴 했지만, 연예인이 받는 출연료와 아나운서의 출연료는 책정 자체가 다르다.

우리는 월급 외에 자료비 명목으로 받는 것이기에 텔레비전 출연료가 8천원에서 2만원, 라디오는 보통 5천원을 지급받는다. 물론 월급 수준은 대기업과 엇비슷한 수준으로 적지는 않다. 그러나 직업의 특성상, 의상이나 헤어, 피부, 메이크업, 액세서리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빠듯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요즘은 아나운서를 ‘아나테이너’라고 부르며 준 연예인 취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일 뿐이다. 연예인들의 화려함도 좋지만 아나운서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지적이고 단아한 이미지 위에 오락적인 부분이 가미될 때 흥미를 느끼는 것이지, 연예인과 똑같은 이미지를 가질 때 아나운서의 고유성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은행에 저축하고, 펀드에 투자하는 것만큼 사람에 저축하고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호의를 저축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어떨까? 그것이 내 통장이든 타인의 통장이든 간에….

주위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어라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가 배신을 당한, 소위 말하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사람들은 마치 세상의 숨겨진 진실을 말하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한다. “머리 검은 짐승은 믿지 마라.”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다.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인생이 뭐 그렇게 행복하겠는가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맥이 화려하다. 그들은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도 엄청난 투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생각하면 결국에는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지금 눈앞의 사람에게 주목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떤 잘못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선입견을 가지고 봐서는 안 된다. 다양하고 복잡한 프리즘 같은 인간의 면면을 한 가지로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나 자신도 언제 어느 때나 늘 친절하고 다정하고 최선을 다하진 못하지 않는가? 그 사건을 봐야지, 그 사람을 봐서는 안 된다.

지금,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자. 가식이라고 생각해도 호의를 베풀어라. 그 호의는 베푸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를 돌고 돌아 나일 수도 있고 혹은, 나 아닌 그 어느 누군가에게 더 큰 호의로 돌아가서 또 다른 싹을 틔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항상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리:박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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